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주도한 미국 역시 구조적 난제에 봉착했다. 38조달러를 넘어선 연방 부채에 전쟁비용이 가산되면서 재정적자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로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무산됐고, 높은 금리와 부채 수준에서 군사비 지출까지 늘어나면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신용불안이 금융시장을 압박할 가능성도 크다.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미국은 군사 패권과 사법·경제 질서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힘의 정치'가 오히려 달러 신뢰도와 재정건전성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된 형국이다.
이번 중동 위기로 더욱 우려되는 것은 지정학적 긴장과 함께 통상갈등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국·일본·유럽연합(EU)·대만 등을 대상으로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요 품목별로 수출국의 '과잉생산'을 빌미 삼아 보복관세를 추진하고 있다. 동맹국의 정당한 산업·교역 정책을 불공정무역으로 낙인찍어 통상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에너지 공급망이 불안한 상황에서 관세 압박까지 강화된다면 세계 경제는 지정학적 충격과 통상갈등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구조상 중동의 군사충돌이 장기화되어 호르무즈 긴장이 고조되면 에너지 가격 급등이 불가피하고, 이는 국내 물가와 산업 생산비용을 동시에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세계 소비자물가가 약 0.4%p 상승하고 경제성장률도 둔화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면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주력 수출품목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공급망 재편에 따른 추가 비용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현실화된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 중심의 통상·안보 프레임에 갇히지 않도록 실질적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들과 협력기반 확대가 시급하다. 외교적 해결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과 공조를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제고하고, 중동 산유국들과도 직접소통 채널을 확대하여 에너지 수급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협상 레버리지를 확보하면서 아세안, 인도, 중앙아시아 등 주요 신흥시장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한다.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 그리고 변화하는 통상질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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