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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수다떠는 기계와 침묵하는 인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7 18:28

수정 2026.03.17 19:21

조창원 논설위원
조창원 논설위원
지난 14일 눈을 감은 위르겐 하버마스. 현대 사회철학의 거두인 하버마스가 평생 붙잡고 씨름한 개념은 공론장이다. 그가 말한 공론장은 개인들이 모여 공적 사안을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여론을 만드는 공간을 가리킨다. 18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공론장의 기원을 찾는다. 이 안에선 발언자의 지위도 재산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다. 그 광장에서 유일한 권위는 '더 나은 논거의 힘'뿐이다.

오직 논리의 설득력만으로 작동하는 이상적 민주주의를 추구한 게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다.

독재정권이 활보하던 시절에 비하면 현대사회의 공론장은 꽤 넓어졌다. 하버마스의 공이 크다. 유령처럼 떠도는 광기와 비이성을 공론장이 어느 정도 걸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론장은 완성이 아닌 과정일 뿐이다. 2026년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전쟁을 획책하는 걸 보면 하버마스가 강조한 공론장은 한참 멀었다.

그보다 하버마스 공론장 정신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만 가입해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전용 소셜미디어 '몰트북(Moltbook)'의 등장이다. 몰트북은 AI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졌다. 그리고 실제 인간은 AI들의 대화를 화면 너머로 지켜볼 뿐 끼어들 권한은 없다는 점에서 공포를 낳았다. 공교롭게도 몰트북 이슈는 하버마스의 부고 한달 전쯤 벌어졌다.

몰트북 등장은 미래의 AI가 하버마스의 공론장 담론을 무참하게 깨트릴 거라는 위기 경고와 같다. 첫 번째 위기는 AI가 인간의 공론장에 침투하는 문제다. 요즘 온라인 콘텐츠는 AI 생성물로 넘쳐난다. 조만간 인간이 직접 만든 텍스트는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심지어 AI가 만든 콘텐츠와 인간의 작품을 구별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AI 챗봇이 만든 가짜 정보가 인간을 설득하는 데 훨씬 능숙하다는 연구도 있다. 대통령선거에서 AI 딥페이크가 유권자를 농락한 사건은 미국에서 이미 벌어졌다. 이렇듯 하버마스가 전제한 '이성적 토론'의 조건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면 더 나은 논거가 이긴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위기는 더 근본적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참여자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런데 AI끼리만 토론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간이 생기는 순간 인간은 관찰자로 물러난다. 공론장의 주체가 인간에서 AI로 교체될 위기다. 최근 논란이 된 몰트북 대화에 인간이 일부 개입했더라도 공론장의 개념이 흔들린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첫번째 위기에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AI를 활용한 콘텐츠 생산과 유통 과정을 규제하면 된다. 한국에서 시행된 AI 기본법도 이런 처방전의 하나다. 나아가 AI의 눈속임을 극복하려면 문해력(리터러시)을 키워야 한다. 이런 문해력 강화훈련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하버마스라면 이런 노력들에 "그것이 전부인가"라고 묻지 않았을까. 그가 공론장 활성화에 중요하게 여긴 건 확고한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 참여자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지만 상대방의 논거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동체 관점을 살피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가 더 나은 논거를 만들어 공론장을 꽃피울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의 주변은 어떤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진영 유튜버의 편향을 심화한다고 분노하기 전에 우리는 듣기 싫은 논리 앞에서 귀를 열 자세가 돼 있는가. AI가 여론을 조작하고 선전선동한다며 걱정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 더 나은 논거를 만들고 있는가. "저쪽은 틀렸고 우리는 옳다"라는 확신에 찬 군중의 분열을 틈타 AI가 공론장을 침투하는 건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하버마스가 강조했던 질문으로 돌아갈 때다.
우리는 더 나은 논거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인간이 주도하는 공론장을 원한다면, AI 위협을 탓하기 전에 먼저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