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파원 칼럼] '슈퍼맨' 美의 급소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8 18:33

수정 2026.03.18 18:33

이병철 뉴욕특파원
이병철 뉴욕특파원
미국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21세기 최강국이다. 군사력을 비롯해 경제, 문화, 스포츠, 사회 등 미국과 견줄 수 있는 곳은 없다.

숫자부터 보자. 미국의 연간 국방비는 약 9000억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약 37%를 차지한다. 2위인 중국(약 3000억달러)과도 3배 가까운 격차다. 러시아 역시 1000억달러 수준에 그친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군사력 1위 국가다.

경제 규모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조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약 19조달러로 뒤를 잇는다. 한국은 1조8000억달러 규모다. 군사력과 경제력만 놓고 보면 미국에 맞설 국가는 없어 보인다. 문화,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는 전 세계 극장 수익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 구단 1위는 미국프로풋볼(NFL) 댈러스 카우보이스로 130억달러(약 19조원)의 가치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무적의 슈퍼맨이 잇따라 체면을 구겼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모두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첫 번째 급소를 찌른 건 중국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무려 145%의 관세폭탄을 퍼부었다. 미국 경제력이라면 중국도 곧 손을 들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런데 중국이 예상치 못한 패를 꺼냈다. 희토류였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스마트폰, 전투기, 전기차 배터리, 첨단 미사일 등 미국 문명을 떠받치는 거의 모든 것에 들어가는 그 17가지 원소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의 약 70%를 채굴하고, 전 세계에서 채굴된 희토류의 90% 이상을 가공한다. 미국 산업계가 패닉에 빠지자 미국 협상단은 '90일 관세 휴전'의 전제조건으로 중국 측에 희토류 수출재개를 공식 요구했고 결국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유예하자 미국은 예고했던 대중 100% 추가 관세를 철회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란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에서 이란이 꺼낸 카드는 원유였다. 전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그 좁은 바닷길을 이란이 사실상 봉쇄하자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겼다. 국방비 9000억달러짜리 군대가 폭탄은 떨어뜨릴 수 있어도, 전쟁의 끝을 마음대로 그릴 수 없게 됐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천연자원이다. 희토류와 원유, 두 나라 모두 자원을 국가 전략무기로 삼아 미국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 또 다른 공통점은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3년째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 이번 미국과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37년간 이란을 철권통치했다. 수십년 된 이들의 권력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반면 미국은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다.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다음이 약속되지 않는다. 미국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 특유의 '시간의 제약'이 전략의 일관성을 흔든다. 관세, 제재, 군사행동 모두 단기 성과를 요구받는 정치일정 속에서 설계된다. 반면 중국과 이란은 장기전을 전제로 움직인다. 희토류든 원유든 몇 달, 몇 년을 버티며 상대의 피로를 기다릴 수 있다. 결국 싸움의 본질은 힘의 총량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얼마나 긴 호흡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것이 21세기 패권의 진짜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주의가 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진핑의 장기집권은 중국 내부에 누적된 불만과 비효율을 덮어두고 있고, 37년 철권통치를 한 하메네이의 이란은 결국 전쟁을 자초했다. 독재는 단기 전술에선 유리해 보여도,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늘 스스로 무너졌다.
진짜 질문은 민주주의를 버릴 것이냐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단기 선거 논리를 넘어 더 긴 호흡의 전략을 품을 수 있느냐다.

prid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