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축일수'의 함정
정부, 재고 확대에 초점 맞추지만
핵심광물 등 장기계약 어렵고
비축품목과 실제 수요 안맞기도
통로 막힐 때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적 비축'으로 체계 바꿔야
정부, 재고 확대에 초점 맞추지만
핵심광물 등 장기계약 어렵고
비축품목과 실제 수요 안맞기도
통로 막힐 때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적 비축'으로 체계 바꿔야
■비축일수 증가 속도 더뎌
19일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광해광업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최근 3년간 지정학적 갈등과 수출통제 등으로 공급망 위기가 총 8차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광물 비축은 사실상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비축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밝힌 13종 가운데 9종은 비축일수가 단 하루도 증가하지 않았고, 10종은 여전히 60일 미만 수준에 머물렀다.
비축 확대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배경에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한다. 그동안 비축예산은 연 단위로 편성되고, 국가계약법에 따라 일반 경쟁입찰 방식의 단기(스팟) 구매만 가능했다. 장기계약을 통한 안정적 물량 확보가 어려운 구조여서 국제 가격 변동과 공급불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축품목과 실제 산업 수요 간의 괴리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튬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용 고밀도 배터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 수요가 크지만, 현재 비축은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낮은 탄산리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나 쌓았느냐'보다 '무엇을 쌓았느냐'가 더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나프타 재고는 2~3주 수준에 불과하고, 수입물량의 절반 이상이 호르무즈해협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공급차질이 발생하자 일부 기업은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주요 업체들 역시 가동중단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숫자상 비축여력이 존재하더라도 생산 현장에서는 '몇 주' 단위 대응에 그친다는 의미다.
이에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한시 지정하고 대체수입선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원유·액화천연가스(LNG) 중심이던 전략품목 관리범위를 석유화학 원료까지 확대한 것이다.
실제 공급차질이 산업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이날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공급망 시나리오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약 3주간 지속될 경우 한국 제조업 생산비가 5.4%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연구원 빙현지 전문연구원은 "원유·LNG뿐 아니라 나프타·무수암모니아·헬륨 등 에너지 연계 산업재는 리스크가 동시에 상승하는 구조인 만큼 이를 에너지와 함께 통합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봉쇄 심화 시 가격 충격보다 실제 생산차질이 크게 나타날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전략품목 지정범위를 확대하고, 재고·계약·공급선 분산 현황을 통합 관리해 공급망 조기경보 체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 비축'으로 전환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비축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고는 충격을 완충하는 완충제에 불과하다.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는 재고를 소진하는 시간싸움일 뿐"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비축 확대가 아니라 '전략적 비축 운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개최한 '핵심광물 공급망 및 비축체계 고도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 방안' 전문가 간담회에서도 단순 재고 축적이 아니라 공급충격 발생 시 산업 생산차질을 완화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과도한 비축은 국가재정 부담과 시장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수입선 전환 △물류 대응 △대체소재 활용 등과 연계된 체계적 운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