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22년 경기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메시지 전송은 물론 택시 호출과 결제 서비스까지 멈춰 서며 일상이 멈춘 듯한 '디지털 정전'을 겪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시스템공학에서 말하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다. 시스템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단 하나만 고장 나도 전체가 멈춰버릴 수 있는 취약지점을 뜻한다. 디지털 세상은 특정 플랫폼이나 데이터센터에 강하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효율을 위해 집중시키는 순간, 보이지 않는 취약점도 함께 생겨나는 셈이다. 디지털 세계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이런 구조는 흔하다.
예를 들어 집에서 와이파이 공유기 하나에 모든 기기가 연결돼 있다면, 공유기 전원이 꺼지는 순간 집 안의 인터넷이 모두 멈춘다. 엘리베이터 한 대뿐인 건물에서 고장이 나면 층간 이동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편의를 위해 한곳에 기능을 집중시키는 순간, 그 지점은 동시에 취약점이 된다.
인류 우주과학의 정점으로 불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역시 이 문제와 싸워야 했다. 발사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을 가장 긴장시킨 것은 무려 344개의 단일 장애 가능성이었다. 볼트 하나, 핀 하나만 어긋나도 약 12조원의 예산과 25년의 연구가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연구진은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과 집요한 점검으로 이 위험들을 하나씩 줄였고, 결국 130억년 전 우주의 빛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엔지니어들은 이런 취약성을 점검하기 위해 다소 냉정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몇 명이 버스에 치이면 프로젝트가 멈출까?" 이른바 '버스지수(Bus Factor)'다. 지수가 낮을수록 지식과 역량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는 뜻이고, 시스템은 그만큼 취약해진다. 하나의 엔진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그 엔진이 흔들리는 순간 대안 없이 멈춘다.
이 문제는 기술 시스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산업 구조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산업이 경제의 엔진이 되는 것은 강점이지만, 그 엔진 하나에 전체의 무게가 실리는 순간 강점은 곧 취약점이 된다. 과학기술 생태계 역시 특정 분야에 인력과 지식이 과도하게 집중된다면 또 다른 단일 장애점을 만들 수 있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중화다. 백업을 두고, 우회로를 만들고, 여러 선택지를 남겨 두는 것이다. 생명공학에서 세포는 대사경로 하나가 막혀도 다른 우회경로를 통해 생존을 이어간다. 산업과 과학기술 분야를 다변화하고, 다양한 배경의 인재가 연구 현장 곳곳에 자리 잡게 하는 일 역시 과학기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이중화 장치'다.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은 장애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장애가 와도 멈추지 않는 힘에서 나온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 육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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