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100원 더 내고 산 그 봉투, 어디로 갔을까[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1 06:00

수정 2026.03.21 06:00

바이오·생분해 플라스틱의 불편한 진실
생분해 인증 받으면 재활용 불가
소비자 86%는 "환경에 도움된다"지만, 전용 처리 시설은 전무
친환경 플라스틱의 현실에 대한 생성형 이미지. 제미나이
친환경 플라스틱의 현실에 대한 생성형 이미지. 제미나이


[파이낸셜뉴스] #. 서울 시내 한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선 A씨는 물건을 담기 위해 '생분해성 봉투'를 선택했다. 100원을 더 내야 하지만 '친환경이니까'라며 집어 든 것이다. 그러나 이 봉투가 실제로 분해되려면 60도 이상의 고온과 특정 미생물이 갖춰진 산업용 퇴비화 시설이 필요하다. 국내에는 이 시설이 사실상 없다. A씨가 구매한 이 봉투는 결국 일반 쓰레기와 함께 소각장으로 향하게 된다.



친환경으로 알려진 바이오 플라스틱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숨은 기술적·제도적 허점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친환경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생분해도 안되는데 다 기존 재활용 시스템과도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재 혁신보다 인프라와 정책 일관성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100원 더 내고 산 그 봉투, 어디로 갔을까[이유범의 에코&에너지]

자연분해와 거리 먼 '바이오 플라스틱'

유럽 바이오플라스틱협회(European Bioplastics)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생산능력은 2025년 231만 톤에서 2030년 469만 톤 수준으로 약 2배 확대될 전망이다. 2025년 실제 생산량도 167만 톤, 평균 설비가동률은 72%로 집계돼 시장이 단순 기대를 넘어 실제 생산 기반을 넓히는 단계로 들어선 것으로 해석된다.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도 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2024년 129억 달러에서 2029년 335억 달러로 커져 연평균 21.3%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이 물량도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 4억 3,100만 톤의 약 0.5% 수준에 불과하다. 시장은 성장하지만, 아직 전체 플라스틱 체제를 뒤흔들 규모는 아닌 셈이다.

친환경 플라스틱을 둘러싼 혼란의 출발점은 개념의 혼용이다. '바이오 기반'은 식물성 원료를 쓴다는 뜻이고, '생분해 가능'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혀 다른 두 속성이 마케팅에서는 뭉뚱그려 '친환경'으로 포장된다. 사탕수수에서 만든 식물 원료 기반 폴리에틸렌(Bio-PE)은 화학 구조가 석유계 PE와 동일해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다. 반대로 석유에서 합성된 생분해성 플라스틱(PBAT)는 조건만 맞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어디서 만들었는가'와 '분해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인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바이오 플라스틱 = 자연에서 잘 썩는 플라스틱'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바이오 플라스틱은 원료의 출처를 기준으로 한 개념에 가깝다. 식물성 원료 등 바이오 기반으로 만들었더라도 생분해되지 않는 소재도 적지 않다. 결국 제품 라벨에 '친환경'이라고 써 있어도 처리 시스템이 없으면 기존 플라스틱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바이오·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표현한 생성형 이미지. 제미나이
바이오·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표현한 생성형 이미지. 제미나이

분해 안 되고, 재활용도 막는 생분해 플라스틱

생분해 플라스틱 역시 만능 해법은 아니다. '생분해'라는 단어만 보면 사용 후 땅이나 바다에 버려도 금세 사라질 것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대표 소재인 PLA(폴리락트산)가 분해되려면 58도 이상의 고온·고습 환경과 특정 미생물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는 산업용 퇴비화 시설에서만 구현 가능한데, 한국에는 이 같은 시설이 전무에 가깝다. 매립지는 산소가 없어 분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바다에 버려지면 수백 년이 지나도 잔류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존 재활용 체계와의 충돌이다. PLA는 외관이 페트(PET)와 거의 동일해 재활용 수거함에 섞여 들어가는 오류가 잦다. 연구에 따르면 단 1~2%의 PLA 혼입만으로도 PET 재활용 배치 전체의 품질이 크게 저하된다. 좋은 의도의 소재가 두 처리 경로를 동시에 망치는 아이러니다.

탄소 발자국 문제도 있다. 비료 생산·농기계 운용·가공 과정까지 합산한 전 과정 평가(LCA)에서 일부 바이오 플라스틱은 석유계 플라스틱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오래전부터 '바다에서 생분해된다'는 식의 단순한 기대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플라스틱에 'biodegradable'이라는 표시가 붙었다고 해서 해양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소재 명칭이 아니라 실제 폐기·회수·처리 시스템이라는 지적이다.

.뉴스1
.뉴스1

장려→중단→유예…투자는 해외로

한국의 생분해 플라스틱 정책은 혼선의 연속이었다.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10년대 초부터 EL724 인증 제도를 운영하며 인증 제품에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나 2022년 '국내 환경에서 실제로 생분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규 인증을 전면 중단했다. 업계 반발이 거세지자 2024년 한시 허용으로 다시 돌아섰고, 2028년까지 실증사업 후 제도 존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 정책 혼선의 대가는 컸다. LG화학은 2조 원을 투자한 충남 대산 생분해 플라스틱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SKC 자회사 SK리비오는 국내 진출을 접고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를 해외로 내모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EL724 제도에는 구조적 모순도 내재해 있다. 인증 기준 자체가 산업용 퇴비화 조건을 전제로 설계됐는데, 같은 재질의 용기라도 인증을 받은 제품은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고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친환경 인증이 오히려 매립·소각을 유도하는 셈이다.

그나마 생분해 처리를 하려면 전용 수거 후 퇴비화 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그 수거 체계 자체가 없다. 업계에서는 음식물쓰레기 수거 체계와 연동해 분리배출 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아직 제도화되지 않고 있다.

'소재보다 시스템, 시스템보다 감량'

전문가들은 친환경 플라스틱이 진짜 친환경이 되려면 인프라 구축, 정책 일관성, 사용량 감축이라는 세 가지가 동시에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산업용 퇴비화 시설 설치와 전용 분리배출 체계 도입 등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정책 일관성 회복도 핵심 과제다. EU는 2024년 분해 가능 마케팅 표기를 실제 처리 환경이 갖춰진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법제화했다. 한국도 2028년 EL724 재검토 시점에 장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사용량 감축이다. '얼마나 잘 분해되는가'보다 '얼마나 덜 쓰는가'가 훨씬 강력한 환경 대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소비자 86.2%가 생분해 플라스틱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지만, 전용 처리 시설도 수거 체계도 없는 현실에서 그 믿음은 오히려 문제를 덮는 안도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플라스틱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올바른 제도와 인프라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덜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친환경"이라 말했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