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리·탐라미술인협회 재단에 기증
무등이왓 기억, 전통주로 다시 잇다
사라진 마을의 상처 공동체 기억으로
무등이왓 기억, 전통주로 다시 잇다
사라진 마을의 상처 공동체 기억으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4·3 당시 군·경 토벌대의 방화로 마을 전체가 불타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에서 빚은 전통주가 4·3 영령을 위로하는 선물로 다시 돌아왔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와 탐라미술인협회는 23일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아 ‘동광리 무등이왓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고소리술’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증했다. 이 기증은 2022년 시작돼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았다.
이번에 기증된 술은 탐라미술인협회 회원들과 동광리 주민들이 함께 무등이왓에서 조를 재배하고, 이를 원료로 직접 빚은 제주 전통 고소리술이다. 고소리술은 제주 전통 증류주로 곡물을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드는 술이다.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로 고소리술 50병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10병을 제78주년 4·3을 맞아 각 지역 위령제에 기증하기로 뜻을 모았다. 술 한 병, 한 병에 잃어버린 마을의 기억과 4·3 영령을 기리는 마음을 담았다는 의미다.
동광리 무등이왓은 4·3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 가운데 하나다. 마을이 불타 사라졌다는 사실은 단지 물리적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터전, 공동체의 일상, 이름 없는 기억까지 함께 끊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에서 다시 곡식을 심고 수확해 전통주를 빚는 일은 없어진 마을을 오늘의 공동체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기억 실천에 가깝다.
이날 기증식에는 4·3 당시 큰넓궤에 은신했던 홍춘호 할머니의 남동생인 홍성집 동광리 노인회장, 강상지 동광리 이장, 강동운 동광리 4·3유족회장, 고정택 안덕면 4·3유족회장, 부정유 안덕면 4·3유족회 부회장, 박진희 탐라미술인협회 대표 등이 참석했다. 동광리 주민과 유족, 예술인이 함께한 자리라는 점에서 이번 기증의 의미는 더 무겁다.
박진희 탐라미술인협회 대표는 “회원들과 함께 4·3의 기억을 예술로 전승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며 “동광리 마을과 뜻깊은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정성을 담아 빚은 전통술을 위령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4·3 영령을 위로하고 기억을 잇는 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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