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카톡 친구는 1000명인데"… 중년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인맥'의 착각 3가지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5 20:00

수정 2026.03.25 20:00

퇴직하는 순간 증발할 '995명의 카톡 지인'에게, 당신은 오늘 밤도 내 진짜 사람의 시간을 뺏어 바치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수요일 밤 9시. 회식 자리가 끝나고 돌아가는 택시 안, 혹은 야근 후 소파에 누워 무심코 스마트폰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저장된 이름은 수백, 수천 명에 달하고, 주말이면 각종 모임이나 경조사 참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정작 마음이 헛헛한 오늘 밤, 편하게 "맥주 한잔하자"고 불러낼 번호 앞에서는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지는 것 같지만, 전문가들은 중년의 상당수가 '인맥'이라는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른의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관계의 오답 3가지를 짚어본다.



■ 첫째, "언제 밥 한번 먹자"… 에너지만 갉아먹는 '관리'의 늪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수백 명에게 복사본 같은 안부 문자를 돌리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경조사에 꼬박꼬박 얼굴을 비춘다.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감으로 스스로 '인맥을 관리'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영국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 옥스퍼드대 교수의 연구 결과는 냉정하다.

인간의 뇌 신피질 크기를 바탕으로 볼 때, 우리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는 150명이다. 그중 깊은 유대감을 나누는 핵심 그룹은 단 '5명'에 불과하다. 150명 밖의 사람들에게 쏟는 시간과 비용은 사실상 허공에 흩어지는 매몰 비용이다. 관리라는 명목하에 뿌려대는 얕은 친절은 결국 내 '진짜 사람들'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를 뺏는 가장 비효율적인 오답이다.

■ 둘째, "내가 아는 대표님이 말이야"… 타인의 권력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자아 의탁'

술자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중년의 레퍼토리다. 유명인, 성공한 사업가, 혹은 권력자와의 얕은 친분을 과시하며 마치 자신의 위상이 높아진 것처럼 행동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사적 영광 누리기(BIRGing)' 현상으로 부른다.

냉혹하지만, 어른의 세계에서 네트워크란 철저히 '동등한 가치의 교환'이다. 내 명함의 무게와 실력이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맥이 아니라 일방적인 팬심이거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일 뿐이다. 타인의 빛나는 타이틀을 빌려 내 존재감을 채우려는 순간, 주변 사람들은 그가 가진 밑천의 한계를 가장 먼저 알아챈다.

■ 셋째, '딜 프렌드(Deal Friend)'를 내 사람이라 믿는 착각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아서 브룩스(Arthur Brooks) 교수는 인간관계를 두 가지로 명확히 분류했다. 업무적 필요나 정보 교환을 위해 만나는 '딜 프렌드(거래처 친구)'와, 아무 목적 없이 내 약점을 드러내도 안전한 '리얼 프렌드(진짜 친구)'다.

대부분의 4050 직장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의 90% 이상을 '딜 프렌드'를 유지하는 데 쏟아붓고, 이들을 자신의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라 굳게 믿는다.

하지만 퇴직이나 이직으로 명함이 바뀌는 순간, 이 거대한 네트워크는 신기루처럼 증발한다.
직장 생활의 성공을 위해 리얼 프렌드를 방치한 대가는 은퇴 후 찾아오는 압도적인 사회적 고립이다.

"당신의 장례식에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켜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회학자들이 인간관계의 밀도를 측정할 때 던지는 고전적인 질문이다.


수요일 밤, 수백 개의 대화방이 떠 있는 카카오톡 화면을 끄며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내 스마트폰 속 화려한 인맥 목록에, '진짜 나의 사람'은 몇 명이나 있는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