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논문들이 다 옥스퍼드에서 나온 연구였어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올 3월부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인간중심 AI연구소(Human-Centered AI Lab) 선임 연구자로 활동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예술가의 역할과 창작의 조건을 탐구하는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박지혜는 이번 협력 배경에 대해 인간 중심성과 창작 주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관련 논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옥스퍼드 연구진과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7일 “철학과 AI, 윤리와 AI 분야 논문들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연구자들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며 “연구 협력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연구소 측에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특히 유럽 기반 연구와의 연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했다.
핵심 주제는 ‘결과물에서 작품으로의 과정’
이번 연구는 ‘결과물에서 작품으로의 과정’을 핵심 주제로 한다. 기술적으로 생성된 출력물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예술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예술가의 의도·표현·수행·공적 책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철학과 공연의 접점에서 탐구한다.
연구 방식 역시 그의 기존 작업과 맞닿아 있다.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 박사 과정을 마친 박지혜는 2013년 TED 메인 콘퍼런스 무대 이후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주제로 활동해왔다. 코로나 시기 인공지능과 결합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공연예술과 AI를 결합한 콘텐츠 제작사 ‘가치창조제이’를 설립해 다양한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융복합 시연 지원사업에 선정돼 인공지능 로봇과 협연한 ‘비발디 사계’ 프로젝트와 AI 작곡 프로그램을 활용한 ‘베토벤 인공지능 소나타 11번’을 선보였으며, 메타버스 공연장 구축, XR 기반 공연 제작, AI 피아노 협연 등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실험해왔다.
박지혜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실제 공연이 실험이 되는 구조”라며 “AI 공연 자체가 하나의 실험실이 되고, 그 안에서 데이터를 축적해 연구를 입증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생성형 AI 시대에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때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승격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서울 중심으로 연주 활동과 병행
연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연주 활동과 병행해 원격 협업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대와 연구를 오가는 구조는 그가 지속해온 작업 방식의 연장선으로, 공연 현장에서 얻은 문제의식을 연구로 확장하고 다시 창작으로 환류하는 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박지혜는 “연구는 연주를 멈추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더 깊이 연주하기 위한 이유”라며 “생성형 AI 시대에 예술가의 가치와 노력, 그리고 그에 합당한 보상에 대해 더 정교하게 질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무대에서 얻은 질문을 연구로 확장하고, 연구에서 얻은 통찰을 다시 연주와 창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는 1년 단위 계약, 갱신된다. 박지혜는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연구소 주최 좌담에 참여하고, 한국에서 진행하는 AI 공연 일부를 옥스퍼드 현지에서도 선보일 계획이다. 연구소 내 정기 세미나는 원격 화상회의로 참여한다.
그는 “옥스퍼드 특유의 인문학 기반 위에서 철학과 AI를 결합한 연구가 진행되는 점이 특징”이라며 “AI와 인간의 접점을 다루는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가게 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박지혜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과 옥스퍼드를 연결하는 원격 공연과 인간·AI 협작을 한 무대에 올리는 실험형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세계여성지도자 정상회의, LG그룹, 세종문화회관 등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며, AI와 공연예술의 현주소를 조명한 신간 출간도 앞두고 있다. 유튜브 채널 ‘가치창조제이’와 ‘박지혜TV’도 운영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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