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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파고든 고위험 상품… 데이터 기반 정교한 규제 시급 [한미재무학회]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29 19:46

수정 2026.03.29 19:44

스콧 베이커 美 위스콘신대학교 교수
'가상자산·예측시장' 제도권금융 편입 추세
플랫폼 통합·수수료 하락에 투자상품 봇물
진입 장벽 낮아져 젊은층까지 빠르게 확산
여러 상품 넘나들며 투자 위험성 커져
전통 자금, '제로섬' 투기성 상품으로 흘러
가계 부채·파산 리스크 늘며 거시경제 위협
소비자에 정확한 투자 정보 제공 동시에
정보기반 규제 설계로 시장 개입 필요성
■ 스콧 베이커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경영대학 재무학과 부교수이자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증재무와 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가계의 금융 선택과 소비 측정, 정책 불확실성이 금융시장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UC버클리에서 경제학·정치학 학사를,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스콧 베이커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경영대학 재무학과 부교수이자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증재무와 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가계의 금융 선택과 소비 측정, 정책 불확실성이 금융시장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UC버클리에서 경제학·정치학 학사를,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담자 이승형씨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주요 연구 분야는 재무학, 거시경제학, 노동경제학이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연구원을 거쳤다.
▲대담자 이승형씨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으로 주요 연구 분야는 재무학, 거시경제학, 노동경제학이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연구원을 거쳤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가상자산과 스포츠 베팅, 예측시장과 초단기 옵션 등 가계가 접하는 위험 금융상품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팽창하며 전통적 투자와 투기, 오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스콧 베이커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는 모바일 접근성 확대와 거래비용 하락, 플랫폼 통합이 맞물린 이 흐름을 개별 시장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가계를 더 빠르고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시키는 하나의 '연결된 현상’으로 진단한다.

오랫동안 가계 소비와 투자를 연구해 온 그는 최근 금융기관과 핀테크 등에서 축적된 거래 수준의 세밀한 데이터를 통해 가계 금융 행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단순한 금지보다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상품별 위험을 구분하는 정교한 규제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가계 금융 및 거시경제 전문가인 베이커 교수와 이승형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의 대담을 통해 가상자산 참여가 활발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이 큰 위험 금융상품 확산의 원인과 파급 효과, 그리고 정책당국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규제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가상자산과 스포츠 베팅을 함께 연구하게 된 배경은.

▲그동안 세금, 고용 충격, 정부 부양책 등이 가계의 소비와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해 왔다.

위험 금융상품 연구는 이러한 과거 연구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특히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제공하는 상세한 '거래 수준(transaction-level)' 금융 데이터가 확보되면서 가계의 세밀한 재무 행동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가계는 이제 여러 위험 금융상품을 따로따로 이용하지 않는다.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람과 스포츠 베팅에 참여하는 사람의 특성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고,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여러 상품을 넘나드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로빈후드 같은 브로커리지는 가상자산 거래를 제공하고, 예측시장은 스포츠 베팅으로 확장하고, 파생상품 플랫폼은 또 다른 형태의 예측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플랫폼 측면의 통합이자 소비자 측면의 통합이다. 그래서 이들을 각각 고립된 상품으로 보기보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위험 금융상품 붐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확산은 공급 측 요인과 수요 측 요인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둘을 깔끔하게 나누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공급 측의 동력이 매우 컸다는 점이다. 규제 완화와 제도권 편입으로 가상자산, 스포츠 베팅, 예측시장이 더 많은 지역에서 합법화되거나 공식적으로 규율되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도 중요했다. 데이터 처리 비용이 낮아지면서 다양한 베팅 상품을 정교하게 가격화할 수 있게 됐고, 거래 수수료 하락은 소액 개인투자자의 참여 장벽을 크게 낮췄다. 주식조차 사실상 무료에 가깝게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단기매매 수요 역시 커졌다. 다만 잠재 수요 역시 원래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본래 복권과 베팅을 선호해 왔고, 이제는 휴대폰으로 더 쉽고 넓은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이런 상품에 더 익숙한 젊은 세대가 수요를 추가로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밖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는 어떤 시사점이 있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공급 측 순풍이 불고 있다. 국가마다 법·제도 변화의 속도는 다르지만 가상자산은 점점 더 제도권 금융 안으로 편입되고 있고, 소비자는 직접 채굴하지 않아도 일반 증권 계좌를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거래 수수료도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개인투자자가 변동성이 큰 단일 종목이나 새로운 위험 상품에 진입하기 쉬워졌다.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가 특정 상품 하나만 따로 떼어 보지 말고, 여러 위험 금융상품이 동시에 확산하는 구조 자체를 봐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어느 한 상품만 막는 방식으로는 전체 위험 이동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가상자산과 스포츠 베팅은 가계 재무에 서로 다른 영향을 주나.

▲가상자산 투자자는 평균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더 높고, 전통적 주식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금융 이해도가 높은 집단이 먼저 진입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가격 변동에 대해 전통적 주식 투자자보다 더 높은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10년간 가상자산은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해 왔다. 그래서 가상자산 자체가 곧바로 가계 재무 악화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아직 강하지 않다. 다만 이런 결과가 영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향후 대규모 가격 하락이 온다면, 다른 위험시장과 유사한 재무 불안의 증거가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반면 스포츠 베팅은 보다 직접적으로 가계 예산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스포츠 베팅은 전통적 투자에서 자금을 빼내 음(-)의 기대수익을 갖는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성격이 강하며, 그 결과 재무적 곤란, 부채 증가, 나아가 파산 증가와도 연결될 수 있다. 즉 가계가 양(+)의 기대수익을 가진 인덱스펀드 대신 음(-)의 기대수익을 가진 베팅으로 자금을 이동시킬 때 문제가 커진다.

―이러한 투자 행위가 참여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 정부는 이런 시장에 개입해야 하나.

▲일률적 금지를 해법으로 보지는 않는다. 스포츠 베팅, 예측시장, 이진옵션 같은 상품은 중개수수료 등의 거래비용을 고려할 때 본질적으로 수익을 내기 힘든 제로섬(zero-sum) 혹은 네거티브섬(negative-sum) 구조를 가지지만, 그렇다고 모두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는 오락적 효용이 있고, 일부는 헤지나 정보 집약 기능을 가질 수도 있다. 예측시장은 특정 사건에 대한 집단적 정보를 가격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사회적 기능도 가진다. 베팅 자체를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마찰(information frictions)이다. 많은 가계가 이런 상품의 기대수익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히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믿거나 전통적 주식투자와 비슷한 종류의 '위험 투자'라고 느끼고 있다. 소비자가 상품별 비용과 기대손실, 기대편익을 더 명확히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광고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으며, 선거나 스포츠 경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일부 예측시장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제한을 둘 수 있다. 한국 정책당국 역시 '허용이냐 금지냐'의 이분법보다 상품별 구조와 소비자 오인을 줄이는 방식의 규율 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계 차원의 위험이 왜 거시경제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 있나.

▲이 시장들의 규모가 이미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보더라도 가상자산, 소매형 파생상품, 스포츠 베팅, 온라인 카지노 등은 수천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개별 가계의 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 투자, 나아가 국내총생산(GDP)과도 연결될 수 있다. 스포츠 베팅 손실은 비교적 개별적이고 분산돼 있을 수 있지만, 국민 다수가 같은 가상자산 자산군에 함께 노출되면 가격 급락이 소비와 다른 투자에 연쇄적 충격을 줄 수 있다. 결국 특정 가계의 손실이 모이면 거시경제적 파급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설령 변동성이 가구별로 흩어져 있더라도 그것이 부채 증가와 파산, 재무 불안으로 누적되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외면하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위험 금융상품의 확대를 단지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가계 재무 안정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은 무엇인가.

▲최근 가장 우려되는 위험 신호는 사람들이 '더 빠르고 극단적이며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금융 상품을 점점 더 선호함에 따라, 이러한 상품에 대한 대중의 노출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주식 단기매매보다 가상자산이 더 변동적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 제로데이 옵션, 경기 중 스포츠 베팅, 하루이틀 안에 결과가 확정되는 예측시장은 손익이 훨씬 빠르게 확정된다. 이런 상품은 돈을 두배, 열배로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전액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손실의 누적 속도다. 평균적으로 기댓값이 음수인 거래가 짧은 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면 가계 재무의 불안정성은 전통적 투자상품보다 훨씬 빠르게 커질 수 있다.

―거래 수준 데이터는 왜 중요한가.

▲거래 데이터의 강점은 규모, 정확성, 완결성에 있다. 설문조사는 많아야 수백 혹은 수천가구를 보지만 거래 데이터는 수십만, 수백만가구를 관찰할 수 있다. 또 응답자의 기억이나 자기 보고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입출금과 지출 흐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 베팅 지출이나 가상자산 계좌 입금액 같은 민감한 정보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손실을 본 사람도, 큰 이익을 본 사람도 설문에서는 정확히 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거래 데이터는 이런 보고 편향을 크게 줄여 준다. 무엇보다 특정 계좌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계의 다른 소비와 저축, 소득 흐름까지 함께 볼 수 있으며 한 가계를 긴 기간 동안 추적 관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계가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원인뿐만 아니라, 이러한 투자 행위가 전체 가계 예산에 미치는 연쇄적인 파급 효과까지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데이터를 직접 활용하거나 이를 이용한 학계 연구를 정책 판단에 반영한다면 훨씬 시의성 있는 대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대형 은행과 금융기관들도 이런 거래 데이터를 가공해 거시경제 흐름을 읽는 데 활용하고 있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prid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