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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4·3 국가폭력 시효 폐지”…제주서 인권·에너지·과기원 청사진 함께 꺼냈다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30 19:52

수정 2026.03.30 21:40

한라대 타운홀서 12번째 민생 행보… 4·3 후속 입법 재추진
2035 탄소중립·4대 과기원 연합캠퍼스·관광 혁신 구상 제시
“제주 마음 정책에 담겠다”… 취임 후 첫 공식 제주 방문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한라대학교 한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주4·3 후속 입법과 에너지 대전환, 미래산업 육성 구상을 함께 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한라대학교 한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주4·3 후속 입법과 에너지 대전환, 미래산업 육성 구상을 함께 제시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제주 공식 방문에서 제주의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는 인권의 가치와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미래 비전을 결합한 ‘제주 대전환’의 시대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제주4·3 후속 입법과 에너지 대전환, 첨단인재 육성 구상을 한꺼번에 내놨다. 과거 국가폭력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인권 의제와 재생에너지·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먹거리를 한 자리에서 함께 제시한 점이 이번 제주 타운홀 미팅의 핵심 의제다.

이 대통령은 30일 제주한라대학교 한라컨벤션센터에서 12번째 타운홀 미팅 ‘제주의 마음을 듣다’를 열고 도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서는 제주4·3 후속 조치와 탄소중립, 관광, 과학기술 인재 육성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 “국가폭력에는 시효 없다”... 4·3의 완전한 해결 의지 피력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제주 4·3 후속조치와 에너지 대전환, 미래산업 육성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제주 4·3 후속조치와 에너지 대전환, 미래산업 육성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장 먼저 힘이 실린 대목은 4·3이었다. 이 대통령은 제주4·3 같은 국가폭력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진상 규명과 책임, 보상이 분명해야 한다고 말하며 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추진 방침을 재확인했다. 4·3을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국가 책임을 다시 묻는 현재의 과제로 올려놓은 셈이다.

이 대통령은 제주의 깊은 상처인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통감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권력에 의한 가해 행위는 그 성격상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며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처벌에 대한 ‘공소시효’뿐만 아니라 배상에 대한 ‘민사시효’를 완전히 폐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과거 당 대표 시절 거부권 등에 가로막혔던 아쉬움을 토로한 이 대통령은 “이제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여야가 힘을 합쳐 입법적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며 “유가족들이 더 이상 법적 시효에 묶여 눈물 흘리지 않도록 명예 회복과 실질적 보상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4·3의 진상 규명과 보상, 책임을 제도적으로 더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공소시효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사처벌을 못 하게 하는 제도이고 민사 소멸시효는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 기간을 제한하는 제도다. 대통령 발언은 국가폭력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책임 추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4·3 유족 입장에서는 명예회복과 법적 책임 문제를 더 오래, 더 분명하게 다룰 길이 열린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의 ‘책임 윤리’와 ‘균형 감각’을 인용하며 “정치는 다수 국민의 최대 행복을 위해 철저히 객관화되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통치 철학을 역설해 청중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 2035 탄소중립 로드맵... 제주를 ‘재생에너지 거점’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한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한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제 분야에서는 제주를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환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됐다. 이 대통령은 중동 전쟁 여파로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진 상황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이 재생에너지로 더 빠르게 옮겨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빨리 현실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역이 제주”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제주가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여건을 갖춘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에너지 전환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제주는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고”라며 “2035년까지 제주 내 모든 에너지를 탄소 배출 없는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탄소중립 제주’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과잉 생산된 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저장하는 ‘그린수소 생태계’ 구축과 전기차 보급 확대를 통한 ‘분산 에너지 특구’ 지정 등을 지원해 제주의 에너지가 재화가 되는 산업 구조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 제주 신차 판매의 5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고, 2035년에는 신차 100%를 전기차로 채우는 계획을 공개했다. 제주 16개 변전소의 계통관리 지정 해제,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저장장치 확충도 함께 제시됐다. 쉽게 말해 제주를 탄소중립 실험장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전환의 실전 모델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 방안도 비중 있게 제시됐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타운홀 미팅에서 KAIST·UNIST·GIST·DGIST가 참여하는 4대 과학기술원 제주 연합캠퍼스를 2030년까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KAIST와 제주대가 협업형 공동대학원 모델을 시작하고 이후 우주·바이오·모빌리티·청정에너지 분야로 협력 범위를 넓힌다는 일정이다.

배 장관은 “제주대학교와 KAIST 등 주요 과기원이 협력하는 ‘연합캠퍼스’를 조성해 AI, 우주, 모빌리티 분야의 글로벌 인재를 제주에서 길러내겠다”며 이 대통령의 구상을 뒷받침했다.

이 계획은 제주 미래 산업 전략과도 맞물린다. 제주에 연구와 교육 거점을 세우고 기업 협력과 창업까지 잇는 구조가 마련되면 청년 인재 유출을 줄이고 지역 산업 고도화 속도도 높일 수 있다. 다만 실제 성패는 부지와 재원, 운영 방식, 과기원 참여 범위를 얼마나 빨리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 제2공항은 ‘도민 주권’ 원칙... 관광 패러다임의 혁신 제주가 이뤄야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한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한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역 최대 현안인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서는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은 갈등만 키울 뿐”이라며 “과학적 검증과 도민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자기결정권’이 최우선이며 도민의 선택을 정부는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에 이 대통령은 제주와 전남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엔 “섬 정체성 훼손”이란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관광 분야에서는 제주를 K-컬처와 지역 공동체 자원이 결합된 체류형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방향이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관광 인프라 개선과 콘텐츠 산업 지원, 주민 참여형 관광 모델 확대에 힘을 싣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관광 수도 제주를 위한 제언'에서 “전 세계인이 꿈꾸는 버킷리스트 제주를 하와이를 넘어선 세계 최고의 관광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 장관은 “인천공항과의 환승 체계를 개선하고 크루즈 뱃길을 넓혀 해외 관광객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제주 관광 인프라 개선과 주민이 호텔리어와 가이드가 되는 ‘마을 여행’을 브랜드화하여 관광 수익이 지역 공동체로 직접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며 “제주에 ‘대한민국 관광 아카데미’를 설립해 청년들이 관광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관광 산업에 대해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혁신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제주를 ‘한국의 하와이’로 부르는 것에 머물지 않고 K-컬처와 마을 공동체 중심의 ‘마을 관광’이 결합된 세계적 휴양 수도로 만들겠다”며 크루즈 항만 인프라 개선과 환승 체계 고도화를 약속했다. 제주에서 관광 패러다임의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구상이다.

■ “35년 전 신혼여행의 추억”... 제주 향한 각별한 애정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도민 의견을 들은 뒤 제2공항은 도민 판단에 맡기고 해저터널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사진=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도민 의견을 들은 뒤 제2공항은 도민 판단에 맡기고 해저터널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사진=뉴스1

이날 타운홀의 핵심은 4·3의 정의 회복과 에너지·과학기술·관광을 묶은 제주 미래 청사진 제시에 있었다. 이번 제주 방문은 4·3 추념 국면과 맞물려 인권의 섬 제주를 다시 부각하는 한편 에너지 대전환과 첨단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과 직접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주의 과거를 바로 세우는 문제와 미래 산업을 키우는 문제가 한 자리에서 함께 다뤄졌다는 점이 이번 타운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번 타운홀 미팅은 당초 예정 시간을 넘겨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도민들은 대통령과 장관들의 격의 없는 답변에 여러 차례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이 대통령이 밝힌 개인적인 소회였다.
이 대통령은 “오늘이 마침 35주년 결혼기념일인데 35년 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와서 너무나 좋은 나머지 예정보다 긴 11일 동안 제주 구석구석을 누볐다”는 비화를 소개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느꼈던 제주의 따뜻한 마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그 애정을 바탕으로 제주 현안을 더 세심하게 챙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제주 일정을 끝으로 전국 순회 일정을 마무리하고 제주에서 들은 민심을 국정 운영에 반영할 방침이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