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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방한·무라야마 담화' 등 30년전 외교문서 봉인 해제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31 14:37

수정 2026.03.31 14:37


1995년 8월 일본의 '무라야마 담화' 발표 이후 생성된 외교문서. 외교부 제공
1995년 8월 일본의 '무라야마 담화' 발표 이후 생성된 외교문서. 외교부 제공
[파이낸셜뉴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첫 방한과 김영삼 미국 대통령의 방미 등 그동안 정부가 30년 동안 봉인했던 외교문서 총 2621권(약 37만 쪽)를 공개했다.

31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방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 발표 △김영삼 대통령 미국 방문 △이집트와 국교수립 △유엔 50주년 기념 특별 정상회의 등과 관련된 문서들이 포함됐다. 아울러 북한의 중국식 경제 개방 의지가 30년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는 문건도 공개됐다. 북한이 지난 1995년 방북한 태국의 무역사절단에 "때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이번 공개된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 1995년 방한은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최초의 국가주석 방한이라는 점에서 화제였다.

장쩌민은 지난 1993년 APEC 시애틀 회의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첫 한중 정상회담을 가진뒤 방한을 결정했다. 이후 장쩌민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이어갔다.

장쩌민은 지난 1990년대 초 북한을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삼는 등 북중관계도 유지하면서, 남북·북중을 모두 잡는 다자적 균형 외교를 추구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전 총리가 1995년 8월 15일 전후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일명 무라야마 담화)는 현직 일본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는 담화에서 "일본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많은 나라와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사죄의 뜻을 표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이후의 한일 관계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역사 인식에 대한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05년 고이즈미 담화,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담화 등에서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표현이 반복됐다.

1995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한미 동맹을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상징적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후 처음 방미(시애틀 APEC)에 이어 1995년 재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이 재임 기간 두 차례나 미국을 국빈으로 초청받은 사례였다. 미국측이 한국을 핵심 동반자라고 인식하는 흐름을 보여줬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 연설에서 "한미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미간 상호 합의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자리가 됐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서울 서초동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을 직접 방문해 열람할 수 있다. 공개외교문서 열람청구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신청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열람청구시스템의 경우, 올해 공개된 문서는 4월 중 이용 가능하다.
외교부가 지난 1994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공개한 외교문서는 약 4만2600권(610만여 쪽)에 이른다.

북한이 1995년 방북한 태국의 무역사절단에 "때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문서 일부, 외교부 제공
북한이 1995년 방북한 태국의 무역사절단에 "때가 되면 중국과 유사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외교문서 일부, 외교부 제공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