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기고] 위기의 시대, 다산의 적극행정 ‘융통성’ 배워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31 18:33

수정 2026.03.31 18:33

김영재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김영재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전 세계가 뚜렷한 탈출구를 찾지 못해 악화되는 중동 정세로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인한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망 위기, 미국의 무역 보복 조치 가능성, 생존을 좌우하는 글로벌 AI 경쟁 등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법과 규정이 모호한 영역의 중대한 결정 순간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이에 정부는 위기 돌파를 위해 정책감사 폐지 및 적극행정 활성화 제도를 정비하고, 성과를 낸 공직자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공직문화 만들기에 한창이다. 이는 공직사회가 안심하고 오직 국익과 국민을 위해 업무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2월 27일 산업통상부 적극행정위원회에서 다룬 안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원회는 한전과 한수원이 겪고 있는 UAE 바라카 원전 분쟁의 중재 절차를 런던국제중재법원에서 국내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변경 권고하는 행정지도의 적정성을 심의했다. 막대한 소송 비용과 핵심 기술 유출 위험성을 고려할 때 산업부의 조치는 국익 보호 측면에서 타당성을 지닌 대안으로 검토되었다. 다만, 이 행정지도가 공공기관의 운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강제성을 띤 공권력으로 비칠 경우 향후 또 다른 책임 소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었다.

당시 위원회는 해당 조치의 합법성과 합목적성을 심의한 결과, 기관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권고 형식의 행정지도가 적정하다고 의결했다. 이후 한전과 한수원은 정부 권고안을 각각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행할 예정이며, 이는 적극행정이 일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첫발을 뗀 의미 있는 첫 사례로 평가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가 법에만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백성에게 이롭다면 다소 융통성(변통)을 발휘해도 괜찮다고 역설했다. 규정에 없다는 핑계로 백성을 구하지 않는 것은 목민관의 도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가르침이 공직 사회에 던지는 울림은 여전히 상당하다. 다산이 주장한 적극행정의 가치가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다.

국민과 기업이 공직자에게 진정으로 기대하는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안전한 답'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필요한 답'이다.
법과 규정이 현장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열심히 일한 공직자가 오히려 감사를 걱정해야 한다면 규정에만 기댄 탁상행정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모호한 규정 사이에서 주저하는 공직자들이 하늘과 국민에게 부끄럼 없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보다 탄탄한 안전판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적극행정은 예산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는 국가적 자원이고, 경쟁력의 요소이다.

김영재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