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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길 미래를 열다”..서울서 안동까지, 퇴계 마지막 귀향길 다시 걷다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31 22:24

수정 2026.03.31 22:24

지난 30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서 귀향길 재현 일행이 사정전 일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0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에서 귀향길 재현 일행이 사정전 일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봄길 위에 오래된 정신이 다시 깨어난다.

퇴계 이황 선생이 한양의 벼슬길을 뒤로하고 고향 안동으로 향했던 마지막 귀향 여정이 오늘의 순례길로 되살아난다.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오는 3월 30일부터 4월 12일까지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이어지는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를 연다.

이번 행사는 단순히 옛길을 따라 걷는 재현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450여 년 전 퇴계가 선택했던 ‘물러남의 길’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고, 그 길에 담긴 배움과 성찰, 공동체의 가치를 현재의 삶 속으로 불러오는 데 더 큰 뜻이 있다.

올해 슬로건인 ‘온고지신, 퇴계의 길 미래를 열다’도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킨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처럼, 과거의 길 위에서 오늘의 지역과 공동체, 그리고 미래의 삶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제안이다.

행사는 지난해 산불로 취소된 뒤 1년 만에 다시 열린다. 그래서인지 이번 재현행사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멈췄던 길이 다시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징성이 크지만, 올해는 규모 또한 한층 커졌다. 재현단은 205명으로 꾸려졌고, 여정은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 양평·여주, 충북 충주·제천·단양, 경북 영주를 거쳐 안동 도산서원에 이르는 14개 구간으로 이어진다. 총 이동 거리만 도보 246.5km, 선편 13km, 차량 51km에 이른다.

출발은 서울 경복궁이다. 개막식에서는 도산십이곡 합창과 함께 내빈 인사, 재연 연극이 펼쳐지며 대장정의 문을 연다. 이후 참가자들은 도심과 강변, 나루와 옛길, 서원과 향교를 지나며 퇴계가 걸었던 시간의 결을 몸으로 따라가게 된다. 경복궁에서 두뭇개나루터까지 첫 구간을 연 뒤 봉은사, 미음나루, 한여울, 배개나루, 충주 관아공원, 제천 한벽루, 단양향교, 이산서원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도산서원에 닿는다. 길의 끝이 도산서원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벼슬을 내려놓고 돌아간 길의 종착지가 결국 배움과 수양의 공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행사가 특별한 이유는 걷기와 공연, 강연과 탐방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길 위의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서울 봉은사에서는 강연과 공연이, 충주 관아공원에서는 환영공연과 경과보고, 인문학 강연이 예정돼 있다. 제천 한벽루에서는 청풍의 풍광 속에서 공연과 강연, 탐방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영주 이산서원에서는 사당 알묘와 원규 강독, 강연이 마련된다. 마지막 날 도산서원에서는 소감문 발표와 시상, 도산십이곡 합창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옛 선비의 귀향길이 그저 발로만 걷는 길이 아니라, 보고 듣고 생각하는 길로 구성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는 퇴계를 박제된 위인으로 불러내는 데 머물지 않으려 한다. 자료에 따르면 주최 측은 퇴계의 귀향을 지역 인재 양성, 공동체 형성, 지방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하나의 역사적 모델로 보고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이 화두가 된 시대에, 퇴계의 길은 과거의 자취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질문이 된다. 왜 돌아가야 했는가, 무엇을 남기려 했는가, 지역에서의 삶은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 이번 행사는 그 질문을 길 위에서 다시 묻는다.

행사의 바탕에 놓인 정신은 ‘선인다(善人多)’다. 좋은 사람이 많은 세상, 서로를 살피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이상이다. 퇴계의 귀향은 개인의 은거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의 질서를 향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참가자들에게도 이 길은 단순한 체험 이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축제와는 다른 결의 행사라는 점도 눈에 띈다. 천천히 걷고, 잠시 멈춰 듣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잇는 시간 자체가 이 행사의 내용이 된다.

그래서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는 역사 재현이라기보다 봄철 인문 기행에 가깝다.
벚꽃과 강바람, 옛길과 물길, 서원과 나루를 지나며 한 인물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참가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오래된 길이 오늘 다시 사람을 부르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이어지는 이번 귀향길은, 퇴계의 시간을 걷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하는 드문 문화 여정이 될 전망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