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제주, 선박 MRO 거점 시동… '관광의 섬' 넘어 신산업 키운다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1 09:57

수정 2026.04.01 16:27

제주대 글로컬대학사업단, 한화오션서 MRO 해법 점검
제주도·제주연구원·항발전협의회 등 민·관·학·연 총출동
거제 현장 견학과 한산도 런케이션 묶어 산업·교육 연결
인재 양성부터 지역 생태계 설계까지 제주형 실험 본격화
제주 신산업 통한 지역 성장과 사회적 논의 함께 풀어야
제주지역 해양 물류, 크루즈산업의 중심인 제주항 전경. 제주형 MRO를 민간 산업으로 키울려면 전문 인력 확보와 부품·장비 공급망 구축, 항만 인프라 보강, 기업 유치, 제도 정비가 함께 따라야 한다. /사진=뉴시스
제주지역 해양 물류, 크루즈산업의 중심인 제주항 전경. 제주형 MRO를 민간 산업으로 키울려면 전문 인력 확보와 부품·장비 공급망 구축, 항만 인프라 보강, 기업 유치, 제도 정비가 함께 따라야 한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가 ‘관광의 섬’을 넘어 ‘배를 고치고 관리하는 섬’으로 갈 수 있을까. 제주대학교가 경남 거제와 통영에서 진행한 현장 연수는 이 질문을 산업과 교육, 지역 전략의 언어로 풀어낸 자리였다.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과 협업하여 제주도·제주연구원·제주항발전협의회, 제주항운노조, 제주항만물류협회 등 민·관·학·산·연과 함께 선박 MRO 거점 전략을 현장에서 점검했다. 제주대는 3월 24~25일 경남 거제와 통영 일대에서 ‘제주형 MRO 산업 구축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지·산·학·연 협력 전략 현장 세미나’를 진행했다.

한화오션 사업장 견학과 통영·한산도 런케이션을 묶은 이번 세미나는 제주가 관광 중심 산업 구조를 보완할 새 성장축으로 MRO를 키울 수 있을지 또 그에 맞는 인재를 지역 안에서 길러낼 수 있을지를 함께 따져본 일정이다.

■ 한화오션 현장에서 본 제주 MRO의 미래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과 협업해 마련한 ‘제주형 MRO 산업 구축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지·산·학·연 협력 전략 현장 세미나’ 참가자들이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과 협업해 마련한 ‘제주형 MRO 산업 구축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지·산·학·연 협력 전략 현장 세미나’ 참가자들이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이번 일정에는 제주도, 제주연구원, 제주항발전협의회, 제주항운노조, 제주항만물류협회, 제주청년센터,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제주대 학생들이 참여했다.

주최는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다. 산업 현장 견학에 그치지 않고 지역 전략산업과 교육 체계를 함께 묶었다는 점이 이번 세미나의 핵심이다. 제주대가 최근 밀고 있는 런케이션 모델도 관광 체험형 프로그램이 아니라 산업 현장 학습형 모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세미나 첫날 참가자들은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을 찾아 스마트 MRO와 디지털 전환 기반 정비 체계를 살폈다. MRO는 유지·보수·정비를 뜻한다. 선박을 건조한 뒤 끝나는 산업이 아니라 운항 중인 선박을 계속 점검하고 고치고 성능을 유지하는 서비스 산업이다. 기술력과 부품 공급망, 숙련 인력, 데이터 관리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해 부가가치가 높다.

한화오션은 2024년 국내 조선소 가운데 처음으로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추가 수주도 이어가며 이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제주가 MRO를 미래 산업으로 검토하는 배경에도 이런 시장 흐름이 깔려 있다.

■ 왜 제주에서 MRO인가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대형 크레인과 건조 중인 선박이 보이고 있다.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 주최한 현장 세미나 참가자들은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선박 정비·수리 현장을 살펴보는 등 관광 중심 산업 구조를 보완할 제주형 MRO 성장 전략을 현장에서 공유했다. /사진=뉴스1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대형 크레인과 건조 중인 선박이 보이고 있다.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이 주최한 현장 세미나 참가자들은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선박 정비·수리 현장을 살펴보는 등 관광 중심 산업 구조를 보완할 제주형 MRO 성장 전략을 현장에서 공유했다. /사진=뉴스1


제주도는 지난 1월 한화오션과 공동으로 ‘제주 MRO 미래로-오픈 이노베이션 세미나’를 열고 선박 정비·수리산업 육성 구상을 공개했다. 당시 세미나에서는 MRO와 민간 물류 결합, 글로벌 협업 파트너십 구축, 친환경·디지털 산업 생태계 조성, 산학연계 클러스터 구축 등이 추진 방향으로 제시됐다.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전략대학원 김만기 교수는 제주가 대형 조선소 방식이 아니라 모듈·부품·데이터 기반의 신속 경정비 산업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제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입지다. 동북아와 동남아, 서태평양을 잇는 해상 교통의 길목이라는 점, 제주신항 구상과 항만 서비스 기능을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 함께 거론된다. 조선소가 없는 지역이라도 중소 선박 정비, 해양장비 유지관리, 디지털 기반 경정비부터 단계적으로 키우면 서비스 산업 거점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관광 편중 구조를 보완할 산업 다변화 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장 연수 참석자들은 제주의 입지와 한화오션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MRO 거점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제주도는 2035년 제주신항 완공을 계기로 정기 정비 수요 기반을 넓히고 선박 MRO를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핵심은 산업 구조 전환이다. 제주 경제는 관광 의존도가 높고 외부 변수에 흔들리기 쉽다. MRO는 관광처럼 계절을 타는 산업이 아니라 기술과 계약, 정비 수요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신산업이다. 배가 다니는 한 유지·보수 수요는 반복된다. 그래서 MRO는 ‘배를 만드는 산업’보다 오히려 더 길게 먹거리를 만드는 산업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에 다녀온 학생들이 “단순 정비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라고 받아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런케이션을 산업교육으로 넓힌 제주대학교

한화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참가자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선박 MRO 공정과 스마트 정비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 산업 현장 학습을 통해 제주형 전략산업 육성 방향과 실무 연계 가능성을 함께 점검했다. /사진=연합뉴스
한화오션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참가자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선박 MRO 공정과 스마트 정비 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 산업 현장 학습을 통해 제주형 전략산업 육성 방향과 실무 연계 가능성을 함께 점검했다. /사진=연합뉴스


둘째 날 일정은 한산도 제승당, 통영 중앙시장, 경상남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방문으로 이어졌다. 산업 현장, 역사 교육, 지역경제, 인재 정책을 한 흐름으로 묶은 구성이다. 제주대가 추진하는 런케이션은 배움과 체류를 결합한 모델인데 이번에는 그 틀을 MRO 산업 학습으로 확장했다.

다시 말해 지역 전략산업 설계에 제주형 런케이션 방식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런케이션은 learning과 vacation을 합친 말로 쉬면서 배우는 방식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제주도와 제주대, 글로컬대학협의회는 이미 지난해부터 런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협약을 맺고 제주를 교육·연구 체류 거점으로 키우는 모델을 추진해 왔다.

제주대도 올해 들어 충남대와 함께한 제주형 런케이션 프로그램, 글로벌 런케이션 학습관 구상 등 관련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MRO 세미나는 그 런케이션 개념을 산업 현장 학습으로 넓힌 사례로 볼 수 있다.

제주대 글로컬대학사업의 의미도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대학이 산업 현장을 찾는 일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는 제주에 없는 산업을 제주에 어떻게 심을지 묻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결이 달랐다.

‘배를 고치는 기술’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기술이 돌아가려면 항만과 물류, 교육과 연구, 행정과 기업이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함께 본 일정이었다. 제주에서 MRO가 가능하려면 공장 한 동보다 먼저 인재와 제도,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현장이 확인시킨 것이다.

■ 학생들 “전공과 산업 연결성 직접 확인”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 현장 세미나에 참여한 학생들이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조선·해양 산업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산업 현장 견학과 교육 과정을 연결한 실전형 학습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 현장 세미나에 참여한 학생들이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조선·해양 산업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산업 현장 견학과 교육 과정을 연결한 실전형 학습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제주대가 추진하는 글로컬대학 사업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지역과 대학, 산업 현장을 함께 연결하는 학습 모델이다. 이번 세미나는 그 모델이 단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전략산업 설계와 맞물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장에 참여한 제주대 학생들은 교실에서 보던 전공 지식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재욱(전기에너지공학과 4)씨는 “전기·제어 기술이 조선·해양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조선소 기반 기술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설비 운영과 유지보수에서 전력 안정성과 효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제주대 무역학과 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MRO를 그동안 ‘정비’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실제로는 글로벌 물류와 기술 서비스, 공급망이 함께 얽힌 산업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학이 산업 현장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은 교과서 속 용어가 아니라 전공과 일자리와 지역의 미래를 한 번에 묶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역 전략산업이 자리 잡으려면 학생들이 먼저 ‘내 전공이 여기서 일자리와 연결된다’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인재 양성이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세미나는 그 접점을 보여준 사례다. 제주대가 산업 현장과 교육 과정을 한자리에 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용희 제주대학교 글로컬대학사업단 팀장은 “이번 현장 세미나는 기업 견학 한 번으로 끝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제주가 어떤 산업을 키우고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앞으로도 제주도와 연구기관, 산업계와 함께 MRO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과 학과 간 융합 모델을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원장은 “지역 산업이 지속되려면 현장 수요와 교육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MRO 같은 신산업을 지역 인재 양성과 연결할 때 제주형 평생학습과 청년 성장 모델도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남은 과제는 실행력과 사회적 합의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전경. /사진=뉴시스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전경. /사진=뉴시스


과제도 분명하다. 전문 인력 확보와 부품·장비 공급망 구축, 항만 인프라 보강, 기업 유치, 제도 정비가 함께 따라야 한다. 제주형 MRO를 민간 산업으로 키울지 군 관련 수요와 어디까지 연계할지 지역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돌릴지도 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제주도의 구상이 민·군·관 협력과 제주신항 활용 가능성을 함께 내세우고 있는 만큼 추진 과정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사업의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이번 현장 세미나의 의미는 견학에 있지 않다. 제주가 선박 MRO를 새 산업 축으로 세우려면 교육과 연구, 행정과 산업, 청년 인재 정책이 어떻게 한 방향으로 맞물려야 하는지를 먼저 점검한 데 의미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말이 아니라 설계와 실행이다.

질문도 분명해졌다. 어떤 인재를 키울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기업이 들어오며 지역에 어떤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남길지가 핵심이다.
이번 세미나는 그 출발선이었다. 한화오션 현장을 보고 런케이션을 접목하고 지자체와 연구기관, 청년 지원 기관을 한자리에 묶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다.
제주형 MRO가 지역 산업 전환의 실제 모델로 자리 잡을지는 결국 실행의 속도와 설계의 정밀도, 그리고 지역사회의 공감대에 달려 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