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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계유정난 원인은? 권력지도 과학 법칙 밝혔다

연지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1 13:05

수정 2026.04.01 13:05

조선왕조실록의 계유정난 시기 기사원본(왼쪽)과 온라인 한국어 번역본(오른쪽). KAIST 제공
조선왕조실록의 계유정난 시기 기사원본(왼쪽)과 온라인 한국어 번역본(오른쪽). KAIST 제공
[파이낸셜뉴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큰 인기를 끌며 단종과 세조의 비극적인 역사인 ‘계유정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조선 관료 사회의 성공과 목락에 대한 과학적인 법칙이 규명됐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 연구팀은 홍콩침례대학 최동혁 박사(KAIST 졸업생)와 홍콩대학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과 문과방목(文科榜目, 과거 급제자 명단)을 디지털 인문학과 복합계 과학 방법론으로 분석, 조선 관료 1만4600여 명의 경력 패턴을 밝혀냈다고 1일 밝혔다.

연구팀은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이 유지될 때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작동했지만,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불평등이 심화될 경우 국가 전체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조선왕조실록은 6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국가 운영 기록을 담은 세계적 유산으로, 당시 정치·사회 구조를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다. 연구진은 먼저 조선 초기 권력 구조 극적 변동 사태인 1453년 ‘계유정난’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실록 기록을 바탕으로 단종,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과 교류한 관료들의 관계망을 구축한 결과, 세조와 가까웠던 인물들은 공신으로 부상하고 안평대군 측 인물들은 숙청되는 등 권력 변화가 관료 사회에 끼친 영향이 데이터로 명확히 드러났다. 다만 이러한 무력 정변은 조선 역사상 극히 소수의 사례였기 때문에, 연구진은 관료제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장기적인 분석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관료가 맡았던 관직의 높이와 재직 기간을 종합해 ‘총성공지표(Total Success Index)’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각 관료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서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측정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출신 가문이나 지역과 개인의 성공지표 사이에는 일정 수준의 상관관계는 있었지만, 그 수준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정상적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경쟁이 아닌 권세를 통해서 과거 급제자와 고위 관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됐다.

연구팀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가문이 관료의 성공 지표를 집중적으로 차지하는 현상을 확인했으며, 이는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실력 본위의 등용 시스템이 무너진 구조적 변동를 해결하지 못한 조선 사회는 곧 쇠퇴와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주용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기간의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한계를 넘어 한 국가 전체 구조의 역사적 변동을 관찰한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조선사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 해외의 관료제와 비교하고, 전세계와의 교류 기록도 분석해 조선의 국제사적 의의를 거시적으로 규명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홍콩침례대학 최동혁 박사(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 졸업)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통계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 4월호에 게재됐다.
논문은 오픈액세스(open access)로 전 세계 연구자와 일반인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