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화 재고 '빨간불'…운임 상승에 전방산업으로 충격 확대
공사비 상승 등 건설업도 피해 직면…"산업 기반 위협받는 시간"
종전 기대 깬 트럼프 압박에 韓산업 시험대…대응수단 총동원정유·석화 재고 '빨간불'…운임 상승에 전방산업으로 충격 확대
공사비 상승 등 건설업도 피해 직면…"산업 기반 위협받는 시간"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과 관련해 추가 압박 의지를 드러내자 국내 산업계는 장기화할 전쟁에 대비해 대응 여력 점검에 분주한 모습이다.
종전 기대와는 달리 당분간 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충격은 국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 "호르무즈 해협 개방 기대 꺾여"…정유·석화 재고 '빨간불'
2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이란 전쟁 개전 33일차인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앞으로 2∼3주에 걸쳐 이란에 대해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전 기대감으로 일부 안정 흐름을 보이던 국제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다시 가파른 오름세로 돌아섰다.
특히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25%가량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국내 산업계도 이에 대해 대응 방안을 총동원하고 있다.
가장 직격탄을 맞는 정유업계는 비축유 활용과 스팟 물량 확보 등으로 단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라 추가 수단도 모색 중이다.
정부의 '비축유 스왑(SWAP)' 제도를 활용해 수급 불안을 완화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당장 다음 달부터 재고 부족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4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5월부터는 재고가 바닥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이미 가동률 조정에 들어갔다.
나프타 수급 불안과 비용 상승 영향으로 일부 업체는 NCC 가동률을 60%대까지 낮추고 있고, 주요 기업들은 고객사에 불가항력 선언 가능성도 통보한 상태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브라질,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가능한 물량을 최대한 긁어모으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물량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전쟁이 장기화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해 5월부터 수요 관리에 들어갈 예정이라 단기적인 대응은 가능하다"면서도 "6월이 넘어가면 심각한 상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중동전쟁 관련 업종별 석화 제품 수급 상황 점검 회의'에서 굳건한 석화 제품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운임 급등에 항공사 비상경영…건설 공사비 상승 가시화
해운·항공 등 물류 업종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27일 기준 1천826.77로 2월 27일(1천333.11) 대비 큰 폭 상승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이어 홍해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물류비용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 5곳과 티웨이항공이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지난 1일 기준 글로벌 항공유 가격은 갤런당 473.57센트로 전쟁 직전인 지난달 27일(241.38센트) 대비 약 96% 상승했고,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은 134% 급등했다.
전방 산업으로의 영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른 차량 운행 비용 증가와 차량 부제 확대 영향으로 신차 수요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자동차 내외장재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합성고무(폴리머) 가격 상승으로 제조원가 부담과 공급망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공사비 상승 압박이 가시화하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현장에서 쓰이는 수많은 건설기계 장비의 연료비가 오를 뿐 아니라 석유화학제품을 원료로 쓰는 창호, 배관, 단열재 등 건자재, 아스팔트, 페인트 등의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시공사가 조합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조합과 강서구 등촌1구역 재건축조합,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조합에 공문을 보내 자재비 상승 등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최근 6개월 연속 올라 지난 2월 133.69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중 건축 현장에 투입되는 주요 자재 중 하나인 레미콘은 나프타 기반 에틸렌 등을 주재료로 쓰는 혼화제가 반드시 투입돼야 하는데 현재 나프타 공급 상황을 보면 2∼3주 이후에는 재고가 부족해지는 업체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 관계자는 "4월 중순부터는 영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운송 차질·휴업 사례 발생…"국가 차원 외교적 해법 시급"
고환율·고유가 추세로 부담이 큰 국내 수출업계는 운송 차질, 물류비 상승 등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일 정오까지 접수한 중동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우려 포함)는 471건으로 지난달 25일 정오 기준(379건)과 비교해 일주일 만에 92건 늘었다.
기업들이 자체 방어막 구축에 주력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부 차원의 거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2∼3주 내 타격' 예고는 호르무즈 해협의 드론·미사일 기반까지 흔들겠다는 강력한 의지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산업 기반이 위협받는 불확실성 시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종전이 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즉각적인 원유 수급이 정상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인 만큼 국가 차원의 외교적 해법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기창 임성호 한지은 홍규빈 김민지 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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