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 기록은 인권 밝히다”
2만여명 평화공원에 모여 화해·상생 다짐
김민석 총리 “4·3 잊지 않은 시민이 민주주의 지켰다”
오영훈 지사 “기억 포기하지 않은 용기가 오늘 만들었다”
2만여명 평화공원에 모여 화해·상생 다짐
김민석 총리 “4·3 잊지 않은 시민이 민주주의 지켰다”
오영훈 지사 “기억 포기하지 않은 용기가 오늘 만들었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뒤 처음 열린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생존희생자와 유족, 도민 등 2만여명이 평화공원에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화해와 상생의 뜻을 다졌다.
올해 추념식은 해마다 열리는 국가 추념행사를 넘어선 의미를 남겼다. 제주4·3은 오랫동안 제주 안의 비극, 국가폭력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된 뒤 처음 열린 추념식이었다.
세계기록유산은 문서와 재판기록, 증언, 사진처럼 역사적 가치가 큰 기록을 세계가 함께 보존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이번 등재는 제주4·3이 지역의 비극에서 국가폭력과 인권,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는 세계적 기록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추념식 슬로건은 “4·3의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의 기록은 인권을 밝히다”였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뜻은 분명하다. 4·3은 더 이상 과거의 비극을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평화와 인권이라는 오늘의 가치로 다시 읽히고 있다는 의미다. 기록이 세계유산이 됐다는 건 4·3을 더 오래, 더 넓게, 더 책임 있게 전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생겼다는 얘기다.
이날 추념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다. 제주에서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등이 자리했다. 중국·일본·르완다 외교공관 대표도 함께했다. 추념식의 외연이 국가적 행사, 더 나아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기억의 장으로 넓어졌다.
식전행사는 4개 종단 종교의례와 평화합창, 진혼무로 시작됐다. 오전 10시 제주 전역에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렸고 현장에는 첼로 연주와 동박새 소리가 이어졌다. 애국가 4절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4·3 기록물 영상이 상영됐다. 한때 입 밖에 꺼내기조차 어려웠던 사건의 기록이 이제 국가의례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추념사에서 4·3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두지 않았다. 김 총리는 “78년 전 참혹한 비극의 중심에는 불법 계엄이 있었고 2024년 12월 3일 불법계엄의 망령이 되살아났을 때 4·3의 역사를 잊지 않은 제주도민과 국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주셨다”고 말했다.
4·3을 오늘의 민주주의와 연결한 발언이다. 과거 국가폭력이 어떻게 반복될 수 있는지 또 시민이 그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를 4·3의 역사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총리는 희생자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의 책임도 거듭 강조했다. 김 총리는 “결코 제주4·3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가가 추념만 하고 물러설 일이 아니라 법과 제도, 지원과 진실규명까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들의 긴 시간을 짚었다. 그는 “강요된 침묵의 세월을 견뎌내며 처절하게 몸부림쳐 온 절규는 4·3의 진실을 깨우는 원천이 됐고 함께 흘린 피눈물의 외침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특별법과 국가유공자법, 상훈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제주4·3 기록이 세계유산이 됐다고 해서 4·3의 과제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유족 지원, 명예회복, 제도 정비, 왜곡 대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추념은 끝맺음이 아니라 후속 조치를 재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4·3을 제주 공동체의 선택과 연결해 말했다. 오 지사는 “제주4·3이 인류가 기억해야 할 보편의 역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족과 제주도민의 용기 덕분”이라며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상생의 내일로 나아가는 제주의 선택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숭고한 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4·3 왜곡과 훼손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4·3을 피해의 역사로만 보지 않는 시선을 담고 있다. 제주4·3은 억울한 죽음의 역사이자 그 진실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공동체를 다시 세운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올해 추념식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 중 하나는 고계순 어르신의 사연이었다. 고 어르신은 4·3으로 친아버지를 잃은 뒤 작은아버지의 딸로 호적에 올라 평생을 살아야 했다. 올해 2월 가족관계가 바로잡히면서 비로소 친아버지의 이름을 되찾았다. 배우 김미경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된 이 사연은 4·3 해결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4·3의 상처는 당시의 희생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 수십년 동안 호적과 가족관계, 삶의 이력까지 뒤틀어 놓았다. 그래서 진실규명은 과거를 정리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라 무너진 삶을 바로 세우는 일과 맞닿아 있다.
추모공연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재일제주인 4·3유족 량성희의 소해금 연주, 바리톤 고성현의 가곡 ‘얼굴’, 제주도립합창단과 4·3평화합창단, 어린이합창단의 무대가 이어졌다. 일본에 사는 후손과 어린이들이 함께 무대에 선 장면은 4·3이 제주 안에만 머무는 과거라기 보다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역사라는 점을 보여줬다.
추념광장에 마련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전시 공간과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한 DNA 채혈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DNA 채혈은 유해나 가족 유전정보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다. 아직도 이름을 찾지 못한 희생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념식이 지금도 계속되는 진실규명과 신원확인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추모와 기록, 행정과 과학이 한 공간에서 만난 셈이다.
올해 추념식은 제주4·3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준 자리였다. 제주4·3은 더 이상 제주만의 아픔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기록은 4·3을 인류 공동의 역사로 넓혔고 평화공원에 모인 2만여명은 그 역사를 오늘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언어로 다시 새겼다.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족 지원, 관련 법 개정, 왜곡 대응,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 같은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어져야 ‘세계의 유산’이라는 말도 더 단단해진다. 올해 추념식은 그 점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 4·3은 끝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지켜내야 할 현재의 역사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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