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한국 AI 인프라 노리는 미국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5 18:15

수정 2026.04.05 18:15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김성환 정보미디어부장
매년 봄이면 한국에서 주목받는 문서가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다. USTR의 3대 보고서(NTE·스페셜 301조·악덕 시장) 중 하나인 NTE는 미국이 그해 통상압박을 어떻게 높일지 가늠하는 기압계 역할을 한다. 이번 2026년판 보고서가 뿜어내는 기류는 예년과 확연히 다르다. 단순히 기존의 관세나 위생검역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디지털 핵심산업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인공지능(AI) 인프라 조달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USTR은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및 클라우드 자원 조달사업에서 미국 기업이 배제되었다며 이를 신규 무역장벽으로 명시했다. AI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핵심기술로 부상한 시점에, 자국 기업의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타국의 안보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차별' 프레임을 씌우는 모양새다.

한국 국회의 망 사용료(망 사용 대가) 입법 움직임도 '불공정 경쟁'의 대표 사례로 도마에 올렸다. 보고서는 외국 콘텐츠사업자(CP)에게 망 사용료 지불을 강제하는 법안이 통신사의 과점구조를 강화하고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망 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이기도 한 경우가 있으니 망 사용료를 받으면 공정경쟁이 저해된다는 논리다.

망 사용료 이슈의 본질은 '차별'이 아니라 '공정'이다. 이미 네이버 등 국내 대형 CP들은 매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망 사용료를 꼬박꼬박 지불하며 국내 네트워크 인프라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반면 구글(유튜브)은 국내에서도 압도적 트래픽을 점유하고 있지만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았으나 SK브로드밴드와 소송을 이어가다 지난 2023년 9월 합의로 마무리한 바 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2017년 네이버 대표 시절 공식 입장을 내고 "네이버는 이미 막대한 망 사용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불하고 있다. 구글 역시 국내에서 발생하는 매출과 망 사용료 규모를 떳떳하게 공개하라"고 일갈한 바 있다. 당시 네이버가 공개한 망 사용료는 746억원이었는데, 현재 '치지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 비중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최소 1000억원대 이상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사업자는 내고, 외국 사업자는 내지 않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무역장벽 보고서의 논리는 이렇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망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걷으면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망 서비스를 하는 콘텐츠 사업자 역시 사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가면 될 일이다.

클라우드 보안인증제(CSAP)와 물리적 망 분리 원칙에 대한 비판 역시 위험한 논리를 담고 있다. 공공기관과 국가 기간시설의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기술 보호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대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침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의 공급망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데이터 주권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 미국 역시 '틱톡 금지법' 등을 통해 국가안보를 이유로 강력한 디지털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NTE 보고서를 근거로 향후 무역법 301호 조사 등 강력한 보복조치를 예고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의 대다수 표현은 지난해 내용을 복사해 붙인 수준이지만 일부 표현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경쟁정책(competition policy)이라는 표현은 '반경쟁 관행(anticompetitive practices)'으로 표기됐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를 단순한 연례 행위로 치부하지 말고, 범부처 차원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대응 시나리오를 점검해야 한다.

ksh@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