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호르무즈 막혀도 타격 없다… 전쟁이 키운 美 에너지 패권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5 18:46

수정 2026.04.05 18:46

중동戰으로 국제유가 치솟지만
셰일혁명 통해 석유·가스 생산
전세계에 수출하며 입지 강화
과거 美 대통령들 인식과 달리
트럼프는 에너지 무기화에 집중
"국제사회 신뢰 잃을것" 전망도
이란 전쟁이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돼 에너지 공급망이 막히자 셰일혁명으로 화석연료를 수출하게 된 미국 입지가 도리어 강화됐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함께 치솟고 있다. 미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3.78리터(1갤런)당 4달러를 돌파했지만 경제 자체는 큰 충격이 없다. 민심이 등을 돌리고는 있지만 미국은 석유 순수출국으로 유가 상승 타격이 크지 않다.



씨티그룹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에너지를 순수출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국내총생산(GDP)을 0.2% 끌어올린다. 이 때문에 소비 위축 등을 감안해도 올해 GDP 성장률은 당초 전망보다 0.1%p 하락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최대 희생자는 한국 등 동맹국

반면 에너지 순수입이 GDP의 1~2%를 차지하는 유로존(유로 사용 21개국)은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순수입이 GDP의 1~2%를 잠식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0.4%p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GDP 대비 에너지 가격 상승 타격이 가장 큰 곳은 한국이다. 한국은 GDP의 6%를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고 있다. 이는 한국 다음으로 충격이 큰 일본(3.2%), 인도(2.9%)에 비해 압도적을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 안보를 국제공공재로 보호했던 미국이 이제는 에너지 패권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 동맹국들이 에너지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세계 시장에 대한 원활한 석유 공급을 미국이 지켜야 할 임무로 봤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9월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36년 뒤 미국의 태도는 급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밤 대국민 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건 말건 관계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석유는 거의 없다"면서 "필요한 이들이 알아서 가져오라"며 발을 뺐다.

■에너지 순수출국된 미국

이 같은 태도 변화 배경에는 미국의 셰일혁명이 있다. 석유와 가스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리면서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 부시 대통령이 걸프 전쟁에 참전하던 때와는 판도가 다르다. 당시 미국 역시 에너지를 수입해야 했지만 지금은 정유공장 가동을 위해 질이 낮은 중질유를 수입하는 것 외에는 석유를 들여올 이유가 거의 없다. 이미 에너지 슈퍼파워가 됐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국가안보전략'에서 '미 에너지 패권'을 '최우선 전략 과제'로 설정한 것도 이런 변화 속에서 이뤄졌다. 이번 전쟁도 베네수엘라처럼 이란 정권이 쉽게 굴복해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 따른 것이었을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그러나 신문은 미국이 에너지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동맹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탓에 모두들 다른 공급원을 찾아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WSJ은 트럼프가 에너지 패권을 노린다고 해도, 에너지를 무기화했다가 신뢰를 잃은 러시아 꼴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