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제주올레 만든 서명숙 이사장 별세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7 13:43

수정 2026.04.08 07:31

향년 68세… 제주 걷기여행 시대 열어
산티아고 순례길서 얻은 영감으로 개척
2007년 1코스 열고 섬 한 바퀴 길 완성
제주 관광의 결 바꾼 ‘길 내는 여자’ 영면
故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 이사장은 2007년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제주 걷기여행 시대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故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 이사장은 2007년 1코스 개장을 시작으로 제주 걷기여행 시대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올레를 만든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7일 별세했다. 향년 68세.

제주올레 측은 고인이 이날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9시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엄수될 예정이다.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걷기여행 문화를 사실상 새로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해변까지 1코스를 연 뒤 제주올레는 현재 27개 코스, 437㎞ 규모의 장거리 도보여행길로 자랐다. 2012년에는 제주를 한 바퀴 잇는 425㎞ 올레길 완성도 이뤄냈다.

‘올레’는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다. 서 이사장은 이 제주어를 여행의 언어로 바꿔 놓았다. 제주올레는 명소를 빠르게 둘러보고 떠나는 관광에서 벗어나 천천히 걷고 머물며 제주의 자연과 마을, 사람을 만나는 여행 문화를 제주에 뿌리내리게 했다. 서 이사장이 낸 길 덕분에 제주는 ‘빠르게 소비되는 섬’에서 ‘느리게 치유받는 섬’으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고인의 삶은 원래 언론 현장에서 출발했다. 서귀포 출신인 서 이사장은 서귀포초, 서귀여중, 신성여고, 고려대를 거쳐 월간 ‘마당’ 기자를 시작으로 시사저널 정치팀장과 취재1부장, 국내 언론사 첫 여성 편집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23년간 저널리스트로 일한 뒤 언론계를 떠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제주에도 사람 중심의 길을 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서귀포시 대륜동 제주올레 7코스를 걷는 여행자들. ‘올레’는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로 故 서명숙 이사장은 이 말을 제주 대표 걷기여행 브랜드로 키워냈다. /사진=뉴시스
서귀포시 대륜동 제주올레 7코스를 걷는 여행자들. ‘올레’는 큰길에서 집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로 故 서명숙 이사장은 이 말을 제주 대표 걷기여행 브랜드로 키워냈다. /사진=뉴시스


제주올레의 등장은 지역 관광의 문법도 바꿨다. 자동차로 명소를 찍고 이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마을 골목, 해안길, 오름, 밭담길을 걸으며 제주의 속살을 만나는 흐름을 만들었다. 제주올레는 국내 걷기 열풍의 진원지로 자리 잡았고 일본·몽골·영국·캐나다·튀르키예·대만 등 해외 트레일과의 연대로도 이어졌다.

서 이사장은 제주올레를 통해 공익성과 국제성도 함께 확장했다. 관광진흥 유공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동백상,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홍진기 창조인상 사회부문 등을 받았다. 제주올레는 2021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적 지위를 얻으며 국제 NGO로서 위상도 인정받았다.

제주올레 안은주 대표는 “누군가에게는 힘, 누군가에게는 희망, 누군가에게는 치유가 된 이 길을 내어준 이사장을 제주올레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가슴 깊이 추모한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서 이사장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제주올레의 씨앗이 된 인연을 소개하며 길의 의미를 직접 전해 왔다.


서명숙 이사장의 별세는 한 사람의 부음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의 길 하나를 세계적 도보여행 문화로 키워낸 상징의 퇴장에 가깝다.
제주 관광이 무엇을 보고 얼마나 빨리 이동하느냐에서 어디를 어떻게 걸으며 무엇을 느끼느냐로 옮겨간 흐름의 출발점에 서 있던 인물이 서명숙이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