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아르미술관 속 카페 이야기]
1500년 신라 고분군 능선과 현대 미술 어우러지는 오아르미술관
지난해 4월 개관…'왕릉뷰' 입소문 타며 6개월만에 18만명 방문
'셜록현준' 유현준 교수 설계…경주 규제 맞춰 현대적 '박공' 지붕
대릉원 볼 수 있는 고민 구현…'리브 글라스' 통창 병풍·옥상 데크
1층 카페…대릉원 파노라마뷰에 휴식 넘어 '바라보는 경험' 선사
1500년 신라 고분군 능선과 현대 미술 어우러지는 오아르미술관
지난해 4월 개관…'왕릉뷰' 입소문 타며 6개월만에 18만명 방문
'셜록현준' 유현준 교수 설계…경주 규제 맞춰 현대적 '박공' 지붕
대릉원 볼 수 있는 고민 구현…'리브 글라스' 통창 병풍·옥상 데크
1층 카페…대릉원 파노라마뷰에 휴식 넘어 '바라보는 경험' 선사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경주] 미국의 정통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다.
이 타임지 표지, 실체는 따로 있다. 지난 3월 15일까지 경주의 한 미술관에 전시된 미국의 현대 시각 예술가 멍고 톰슨의 작품 '잃어버린 1년(The lost year)'이다. 유리 거울 위 스텐실 작업으로 만든 이 작품은 거울에 비춰지는 모든 사람, 사물이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는 경험을 준다.
1500년 넘는 세월을 지켜온 왕릉이 이 작품 속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건 작품이 전시된 곳 덕이다. 고분군을 마주해 '왕릉뷰'라는 별칭을 얻은 경주 노서동 오아르미술관이다. 덕분에 미술관 속 카페도 '왕릉뷰'로 입소문을 탔다.
왕릉을 품고 작품을 담다
오아르미술관은 경주 출신 미술품 수집가 김문호 관장이 2005년부터 모은 소장품을 바탕으로 설립된 사립미술관이다. 김 관장은 고분군을 바라보는 곳에 과거와 현재, 자연과 예술이 교차하는 감각의 장을 만들기로 했다.
'오늘 만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술관 이름인 'OAR'처럼 전시장은 신라 고분의 능선과 현대 미술을 한 프레임에 담는 장소가 됐다.
미술관을 설계한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건축 공간을 통해서 사람(방문객)과 현대미술, 1500년된 고분. 이 셋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장치로서 건축이 작동하기를 기대했다"고 파이낸셜뉴스에 말했다.
이는 사람들에게도 통했다. 오아르미술관은 지난해 4월 개관하고 6개월 만에 약 18만명이나 찾을 정도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고 경주에서 꼭 가야 할 명소가 됐다. 현재 오아르미술관은 최영욱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멍고 톰슨의 '타임지 표지'는 전시 기간이 종료돼 볼 수 없다.
왕릉을 바라보는 시선 '세 가지'
오아르미술관은 고분군과 미술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건물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선 세계문화유산인 대릉원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먼저 미술관 1층에선 세 가지 시선으로 '대릉원'을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입장하기 전부터다. 바로 미술관 외벽 유리창에 비친 고분의 모습이다.
유 교수는 "건물 외벽 유리창에 풍경을 반사시키도록 했다. 건물 스스로의 존재감을 지우고 대릉원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열한폭 병풍 같은 거대한 통유리창을 통해서다. 이를 위해 '리브 글라스(Rib Glass)' 공법을 사용했다.
보통 큰 유리창은 철로 된 창틀을 쓰면서 경관을 바라볼 때 시야를 해친다.
이런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게 갈비뼈 형태의 유리가 창틀처럼 통창을 지탱하는 리브 글라스다. 유리창을 버티도록 리브 글라스 하부는 바닥에 묻고 상부는 천장에서 잡는다. 보통 큰 호텔 로비나 공항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시야를 가로막는 창틀 없이 파노라마 뷰를 완성했다.
열한폭 병풍 맞은 편 공간에 자리한 오아르카페에서도 색다른 대릉원을 볼 수 있다. 카페의 커피 바 뒤편에 거울처럼 연마된 스테인리스 재질의 '미러서스'다. 음료를 주문할 때 등 뒤의 고분을 미러리스 속에서 볼 수 있다.
역동성을 담은 전시 공간
2층 전시공간으로 올라가면 또다른 형태의 통창이 '대릉원'을 선보인다. 1층은 바닥과 천장이 수평으로 연결돼 있다면 2층은 높낮이를 달리한 천장이 역동적으로 변주를 거듭해 통창의 높이도 달라진다.
천장의 높이는 건축가의 고민과 함께 만들어 졌다. 천년고도를 지키기 위한 경주 지역의 특별한 규제 때문이다. 경주시 도시계획 조례 제53조 제2항에는 지붕의 형태를 두고 "팔작·맞배·우진각·모임지붕으로 하여야 하며, 상부에서 하부로 이르는 면은 곡면으로 처리하여 한국고유의 건축미를 풍기게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오아르미술관은 '박공'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단조로운 형태를 피하기 위해 '종이접기'에 주목했다.
유 교수는 "직사각형 형태의 건축 옥상을 박공처럼 대각선으로 꺾었다"며 "대각선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종이접듯 꺾고 또 꺾어 기하학적 사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 꺾인 사선에 따라 2층 천장의 높이도 달라졌다. 아래로 꺾이면 천장의 높이가 낮아졌고 위로 꺾이면 높아졌다.
덕분에 미술관은 하얀색 벽면에 작품을 거는 기존의 전형을 따라가면서도 새로운 전시 공간이 됐고 작품들은 천장 높이에 맞춰 걸렸다.
지난 3월까지 2층 공간에서 가장 높은 곳, 통창 우측 구석에는 가로·세로 크기가 195x130㎝인 박서보의 '묘법' 연작 중 하나가 걸렸다. 가장 낮은 곳인 통창 좌측 구석에는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 나가이 토모코의 '과일 드레스'가 걸렸다. 크기가 61x80.9㎝였다.
가구의 배치도 이런 '색다름'을 경험하도록 했다.
유 교수는 "통창 앞엔 등받이가 없는 원형 의자를 배치했다"며 "360도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선에 따라 다양한 걸 볼 수 있다. 통창을 향하면 대릉원, 90도 옆면으로 꺾으면 전시 공간과 외부 공간의 연결, 뒤로 돌면 전시 공간을 오롯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대릉원을 마주하는 곳
오아르미술관에서 대릉원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은 옥상이다. 올라가는 계단부터 남다르다. 유 교수의 시그니처인 '파내려간 계단'이다. 이름 그대로 옥상으로 계단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전시 공간 아래로 계단을 파내렸다.
덕분에 계단은 남다른 효과를 낸다. 전시장에서 출발하는 계단 양옆으로 창을 내면서 햇빛은 물론 비가 올 때는 빗방울까지 전시장으로 끌어온다. 빗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단 하부에 배수 시설을 설치했다.
옥상에 올라서면 사선으로 접은 지붕이 보인다. 사선 너머 고분과 현대적 도심이 어우러진 경주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사선의 지붕 일부는 나무 데크다.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하늘과 맞닿은 역사적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건축가와 건축주의 배려다.
건축 재료의 선택도 신중했다. 따뜻하고 유기적인 고분의 곡선에 대응하기 위해 오아르미술관은 차갑고 직선적인 아노다이징 메탈 패널을 외장재로 썼다.
유 교수는 "과거를 흉내내는 대신 완전히 대비되는 현대적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고전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밝혔다.
그림이 걸리지 않는 벽면도 색다름을 선보였다. 시멘트를 벽에 바른 다음 긁어내는 '종석뜯기' 미장으로 나무와 돌 느낌이 나는 거친 표면을 표현했다.
이 미술관은 202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역사와 일상의 경계 위에서 현대 건축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세련되게 보여준 작품"이라며 "전통적 맥락과 현대적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경주의 풍경을 새롭게 읽어내는 건축적 제안"이라 평가했다.
머물며 보다
유 교수는 오아르미술관 1층 카페가 ‘머무르는 건축’의 핵심 공간이라 했다. 단순히 쉬거나 스쳐가는 공간이 아닌 일정 시간 머물며 고분을 하나의 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다.
'앉아서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언덕처럼 보이던 고분은 형태와 질감, 주변 풍경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입체적으로 인식된다.
이를 위해 카페의 낮은 의자에 앉았을 때 시선인 70~80㎝에 모든 걸 맞췄다.
일단 미술관과 대릉원 사이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그 길이 단절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했다. 먼저 도로의 아스팔트는 가리되 벽이 되지 않도록 30㎝가 조금 넘는 낮은 담장을 세웠다.
담장 뒤 폭 좁은 정원에 풀과 꽃이 자라면 아스팔트는 사라지고 대릉원 잔디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어 데크는 내부 바닥과 같은 나무 재질을 깔아 안과 밖을 이어준다.
외부 반사유리는 밖에선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 대릉원을 보는데 걸림이 없다. 현실과 풍경의 경계가 흐려지며 단순히 조망을 넘어 ‘내가 풍경 안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 낸다.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그래서 건축이 의도한 방식으로 풍경이 완성된다.
그래서 다음에 갈 카페는 오래 머물며 풍경을 완성하는 '100년 한옥'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이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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