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약 200건 각하…본안 심판회부 없어
각하 중 66%가 '청구사유 미비'…사전심사 '수문장'
구제역·장영하 등 사건 줄각하에 "의뢰 문의 끊겨"
연 1만 건 추가 예측 여전…"보완 입법 필요" 지적
헌재, 심판인력 확충, 기록송달 협의 등 정비 박차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대상을 엄격하게 선별하겠다'는 명확한 기준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며 '4심제' 우려를 불식시켰다.
일각에서는 청구 범위가 너무 넓어 사전심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전심사 문턱이 너무 높아 기본권 보장에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추가 법 개정을 주장한다.
헌재는 결정례를 축적하며 운용의 묘를 발휘하겠다는 방침이다.
◆청구 60.2% 무더기 각하…'단순 불복' 걸러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7일 오전 0시(자정)까지 322건의 재판소원 청구를 접수 받았다.
전체 접수건수 60.2%에 이르는 194건이 지정재판부 사전심사에서 각하됐다. 헌재는 사건이 접수되면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으로 구성한 지정재판부에서 사전심사를 진행한 뒤 청구가 부적법하면 각하한다.
전원재판부 심판 회부 사건은 나오지 않았다. 재판 불복 부작용의 사례로 거론되던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 장영하 변호사 등이 냈던 청구도 각하됐다.
사전심사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사유는 '재판소원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다. 재판소원 청구 사유는 헌재법 68조 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이뤄진 재판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재판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재판 3가지 요건을 뜻한다.
지난 7일까지 3번의 사전심사에서 '청구사유 미비'를 이유로 각하된 청구는 128건이다. 전체 각하 건수 대비 65.9%로, 모든 사유를 통틀어 가장 많다.
제도 도입 초반 '청구사유 미비'가 뜻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헌재는 사전심사 각하 결정례를 공개하면서 그 기준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기본권 침해를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주장하거나 ▲실질이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법원의 사실인정 또는 증거의 평가 및 법률의 포섭·적용의 당부를 다투거나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 불복에 불과한 사례는 청구사유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단순 재판 불복이나 막연한 주장, 사실관계를 다투는 청구를 거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헌재법 보완 입법 주장도…"청구 범위 너무 넓어"
헌재는 지난 8일 국회에 제출한 답변을 통해 "재판소원 도입에 따라 연간 1만건 이상 사건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재확인했다. 대법원이 연간 4만5000건을 처리하는데, 스페인의 불복률(25%)과 한국 대법원 상고율(30%)를 고려해 산출한 값이다.
스페인은 지난 2007년 재판소원 사건 폭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조직법에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 요건을 추가해 청구사유를 제한한 바 있다.
우리 헌재도 입법 과정에 4심제라는 오해를 불식시키자며 재판소원 청구사유를 규정하는 헌재법 68조 3항 본문에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에 한해 재판소원이 허용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경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0일 헌재 내부 세미나에서 "개정 헌재법 68조 3항은 헌법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한 실질적 사건 선별을 할 수 있는 구조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했다. 청구 범위가 너무 넓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헌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전심사 문턱이 너무 높아 기본권 보호라는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역기능'을 우려하는 쪽에서도 제기된다.
현행 헌재법은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재판(68조 3항 3호)'이 아님이 명백한 경우를 각하하도록 정했는데, 적법성 판단을 하는 사전심사 단계에서 사실상 본안 판단에 준하는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안심사에서 다퉈볼 법한 헌법적 쟁점들을 사전심사 단계에서 과도하게 거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관 수를 늘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정재판부 정족수를 4명으로 늘리거나, 예비 헌법재판관 6명을 늘려 5인 지정재판부 3개를 구성해 명백히 이유 없는 헌법소원을 기각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보완적 해석 축적한다는 헌재…제도 정비 박차
헌재는 결정례를 통해 재판소원 제도 취지에 맞는 보충적인 해석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헌재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법 개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며 "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석을 자제할 것은 아니다. 재판소원 취지에 맞게 합리적 해석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사건 폭증에 대응한 심판역량 확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기획예산처로부터 예비비를 확보해 올해 상반기 헌법연구관 20명과 사무처 직원 18명을 추가로 채용하겠다는 목표다. 이번에 채용할 연구관은 법조 경력자를 중심으로 즉시 심판사건 지원 업무에 투입 가능한 인력을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실무상 쟁점 및 미비점들도 차츰 해소해 나가고 있다. 최근 대검찰청과 확정 형사 재판의 사건 기록을 전자인증등본 형태로 주고 받기로 합의했다.
본안심판 회부 통지, 의견서 요청 대상도 정했다. 재판소원 확정 판결의 심급이 대법원이면 대법원장에게 심판회부를 통지하고 답변서를 요청하기로 했다.
단, 재판취소 결정에 따른 후속 재판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문제는 법원의 재량이라는 입장이다. 취소된 재판을 1심이 할지 대법이 할지 정하는 문제는 헌재의 역할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법원은 최근 헌법연구관 재직 경험이 있는 이규홍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반장으로 '재판소원 후속조치 연구반'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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