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는 얼마나 오를지, 호르무즈해협은 언제 열릴지, 군사충돌이 어디까지 확전될지에 시선이 쏠린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이 전쟁이 끝난 뒤 세계는 어떤 질서로 재편될 것인가다.
지금 세계는 짙은 안갯속에 있다.
실제 사례는 명확하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은 전선의 승패에 몰두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 드러난 것은 유럽 중심 질서의 붕괴와 미국의 부상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세계를 규정한 것은 승전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달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금융질서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역시 단순한 유가 급등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에너지 안보'라는 새로운 국가전략을 낳았다. 전쟁과 충돌의 순간에는 보이지 않지만 안개가 걷힌 뒤에는 언제나 구조가 바뀌어 있었다.
이번 충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해상패권과 에너지 통제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하고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쟁 이후 미국이 동맹에 요구할 비용과 역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에는 방위비 증액과 에너지 의존 탈피를, 아시아 동맹에는 해상안보와 공급망 재편 참여를 요구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안보는 미국, 비용은 동맹'이라는 기존 구조는 '안보도 비용도 함께'로 이동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전쟁과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일본, 한국을 수차례 언급했다.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참여하라는 요구였다. 모두들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그 요구가 '선택'이 아니라 '책임'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동맹 내부의 균열 역시 변수다. 이번 사태에서 일부 유럽 국가는 군사개입에 선을 그었고, 인도 등 주요 신흥국은 독자노선을 유지하려 했다. 전쟁 이후 미국 중심 질서가 재확인되더라도, 동맹의 결속은 이전보다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각국이 사안별로 거리를 조정하는 '조건부 동맹' 시대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에너지 시장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공급경로 자체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루트 확보와 비축전략 강화는 필연적으로 비용 상승을 동반한다. 공급망 역시 효율보다 안보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물류비와 에너지 비용이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다. 이는 결국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장기화시키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도 제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첫째,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재정의해야 한다.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비축능력과 대체에너지 투자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둘째, 동맹 관리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되, 경제·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균형전략이 요구된다. 셋째,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산업에서 '안정적 공급자'로서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질서는 훨씬 더 길게 지속된다. 안갯속에서는 멀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는 순간, 누가 판을 읽고 있었는지는 분명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전쟁 이후의 판을 읽는 시선이다. 한국이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 설계자가 될 수 있을지, 답은 이미 준비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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