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중동 전쟁 여파로 수입물가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급등하면서,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소비자물가로 번지는 2차 파고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입물가 급등이 가공식품·외식·항공료 등 소비자물가로 시차를 두고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충격이 소비자물가 전반을 덮칠 경우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수입물가(원화 기준)는 전월 대비 16.1% 급등해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유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88.5% 급등하며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기름값은 시작일 뿐…가공식품 등 '2차 파고' 우려
앞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내 석유류 항목은 전년 동월 대비 9.9% 뛰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석유를 원료로 쓰는 가공식품·외식 등 2차 제품에는 아직 가격 상승이 본격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4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원재료 가격 충격은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로 전가되기까지 품목에 따라 수개월의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수입물가 폭등의 여파는 앞으로 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석유류 최고가격제 등 대응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수입물가 충격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현 수준의 유가·천연가스 가격이 지속될 경우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6~2.8%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는 2.6%를 제시했다.
한은도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결정문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성장 반토막·물가 급등 전망 제기…'정책 딜레마' 현실화 우려
수입물가 충격이 소비자물가를 본격적으로 덮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순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한국은 고유가 충격에 일본·대만과 함께 가장 취약한 국가군으로 꼽힌다.
IMF는 지난 14일 발표한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을 기존 전망보다 0.7%포인트(p) 높인 2.5%로 상향 조정했다. 성장률은 1.9%로 유지했지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지속할 경우 세계 경제 성장률이 2.5%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투자은행(IB) 나틱시스는 한국 성장률을 1.8%에서 1.0%로 대폭 낮추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틱시스는 "신흥 아시아가 중앙은행이 도울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 직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7월부터 소비자물가가 2% 중후반 수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은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내려야 하는 '정책 딜레마'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기존 충격의 반영, 훼손된 공급망 복구, 에너지 인프라 회복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더 이상 중동 사태를 일시적 충격으로 볼 수 없다"며 7월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도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성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되려면 마이너스(-) 성장이 발생해야 한다"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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