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실패해도 경험이 됩니다, 일단 해보세요" 아이돌 출신 토익강사가 사는 법 [괜찮아, 다시 인생]

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19 10:00

수정 2026.04.19 10:00

[아이돌 '맨사' 출신 YBM 토익 강사 권영준씨]
학교 가요제서 '스카웃'…아이돌 데뷔해 2년간 활동
군 복무 중 잡은 토익책, 4개월 만에 395점→925점
토익 강사로 '제2의 무대', 강단 위 '스타'가 된 남자
아이돌 '맨사' 출신 YBM 토익 강사 권영준씨 /사진=김희선 기자
아이돌 '맨사' 출신 YBM 토익 강사 권영준씨 /사진=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쌤, 옛날에 진짜 아이돌이었어요?"

얼마 전, 수강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아이돌 출신 토익강사' 권영준씨(45)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숏폼 동영상 하나를 올렸습니다. 어느덧 16년차 토익강사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2003년 '맨사'로 데뷔해 2년가량 아이돌로 활동했던 남다른 과거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는 '학생들의 알고리즘에 나타나주겠다'는 포부를 담아, 수강생들 앞에서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절의 안무를 선보였고 그가 올린 영상은 빠르게 확산하며 3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그가 장담한 대로 알고리즘 곳곳에 등장하며 '아이돌 출신 토익강사'인 권씨의 모습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거죠.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돌로 시작해 토익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기까지 그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고요.

우연히 이룬 꿈, 전국투어에 日 공연까지 했던 '리즈 시절'

권씨가 아이돌의 길로 들어선 건 약간의 우연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큰 키에 훈훈한 외모를 가진 권씨는 당시 잡지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학교 가요제에 나가 노래를 부를 일이 생겼죠. 그때 권씨를 눈여겨 본 매니저가 그에게 명함을 줬고, 당시 3명으로 구성돼 있던 '맨사'에 뒤늦게 합류해 2003년 데뷔하게 된 겁니다.

"연습을 6개월 정도하고 바로 데뷔를 했어요. 당시 '동방신기' 데뷔 전이라 아이돌 춘추전국시대였거든요(웃음). 마침 저희 회사에 드라마 '겨울연가' 주제가를 부른 형님이 계셔서 덕분에 일본 활동도 하고, 이래저래 경력을 쌓고 팬도 좀 생겼죠."

전국 투어와 일본 활동까지, '맨사'의 2년은 생각보다 알찼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권씨가 SNS에 올린 영상에는 그들과 그들이 부른 노래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권씨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이들이 '맨사'와 그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권씨는 "기억한다는 댓글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좀 감동받았다"고 쑥스러운 듯 웃었습니다.

'맨사' 활동 당시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맨사' 활동 당시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맨사' 활동 당시 권영준씨 /사진=MBC 갈무리(본인 제공)
'맨사' 활동 당시 권영준씨 /사진=MBC 갈무리(본인 제공)

꿈 이룬 2년간의 시간, 그리고 조용히 내려온 무대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편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정산 문제로 시작한 소속사와 갈등은 야반도주와 소송으로 이어졌고, 결국 상처만 남긴 채 마무리됐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는데, 당시에는 서로 너무 이야기가 안 됐고 또 그 바닥을 몰랐었다"고 돌이키며 쓴웃음을 지은 권씨는 이후 어떻게든 연예계에 남아있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던 현실을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아이돌 활동이 끝난 뒤에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28살까지 군대를 안 가고 버텼던 거죠.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VJ도 하고, 또 제가 보컬 멤버는 아니다보니 노래보다는 연기 쪽으로 해보려고 시트콤도 출연하고 뮤지컬도 하고 그랬어요. 저를 낮추고 들어가서 오디션 보고 그런 게 당연했던 시절이라, 이리저리 이용도 많이 당했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배우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가 연기자로 자리를 잡아보려 노력했지만, 이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미뤄왔던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마지막 회사에서 권씨와 함께 있던 신인 배우가 당시엔 이름 없는 무명이었다가 훗날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연으로 떠오른 배우였다는 뒷이야기는, 지금에서는 수강생들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었고요.

벼랑 끝에서 잡은 토익책, 395점 '신발 사이즈'에서 4개월 만에 925점

연예계 생활을 접고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을 때 권씨의 나이는 28세였습니다. 나이 때문에 육군은 쉽지 않겠다 생각했던 권씨는 경찰학교 악대에서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죠. 처음에는 경찰 홍보단을 지망했지만, 하필 TO가 난 자리가 마술사여서 3개월 동안 공부하다 포기했다는 '웃픈'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아이돌 활동을 할 때도 보컬은 아니었기 때문에 노래에 썩 자신이 없었다는 권씨는 '악대에서는 행사를 많이 다닌다'는 친한 형의 조언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댄스팀 두 명을 섭외해서 '자옥아' 안무를 두 달 동안 연습했죠. 심지어 오디션에는 반짝이 정장을 입고 등장해 '자옥아'를 열창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권씨는 순조롭게 오디션에 붙었고, 경찰학교 악대 복무는 그에게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선물했습니다.

"전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군대에서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게 토익이라는 정답은 없었지만, 영어가 중요하다는 건 주변에서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경찰학교 악대 시절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경찰학교 악대 시절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특별외박을 받기 위해 시작한 토익에서 처음 받은 점수는 395점, 소위 말하는 '신발사이즈'였습니다. 그래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토익에 매달리기 시작한 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간절함 때문이었죠. 새벽 5시 40분에 시작하는 EBS 라디오 강의를 듣기 위해 전날 근무자에게 미리 부탁해 알람을 맞춰두고, 매일 일과가 끝난 후에도 밤 11시까지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진짜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대하면 30살이기 때문에 아이돌은 다시 못 하고, 연기로도 자리를 못 잡았으니 연예계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죠.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토익이 그나마 해볼 만해 보였던 거예요. 회사 가려면 이게 필요하다잖아요(웃음). 그렇게 벼랑 끝에 있으니까 절박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토익에 매달린 권씨는 3개월 만에 이미 LC의 모든 답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귀띔합니다. 하지만 시간 배분에 서툴러 RC를 마치지 못한 채 시험이 끝나버렸고, 한 달 뒤 다시 도전한 시험에서 925점이라는 점수를 받았죠. 모의고사 문제집만 스무 권을 풀어가며 무식하게 쌓아올린 4개월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였습니다.

무대 경험부터 회사원 일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강단 위에서 꽃피다

토익 점수를 들고 제대한 권씨는 한 IT 기업에 취직해 기획팀에서 반년가량을 일했습니다. 하지만 적응이 쉽지 않아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 뒀죠. 트로트를 해볼까 짧게 고민하다 마주한 게 정철어학원의 강사 아르바이트 공고였습니다. 그때부터 운명처럼, 또 차근차근 강사의 길을 밟게 된 거죠.

정철어학원에서 강의법을 배우며 강의와 마케팅을 동시에 익혔고, IT 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습득한 영상 편집과 디자인 감각을 수업에 접목했습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솟아났고 의욕도 넘쳐났습니다. 유튜브가 낯설던 시절, 토익 시험 직후 시험장 밖에서 라이브로 해설을 진행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네요.

토익 강의 중인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토익 강의 중인 권영준씨 /사진=본인 제공

"아이돌 활동도 연기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다 수업에 활용하고 있어요. PPT를 띄우고 수업하는 강사는 있는데 저는 거기에 애니메이션을 집어넣어서, 한 시간 내내 PPT가 막 날아다니고 그랬어요. 기획팀에서 짧게 일하며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되고, 다 경험이 돼서 꽃을 피운 거죠."

이후 YBM에 합류한 그는 축구선수 출신 토익강사인 현재의 파트너 이루겸 강사를 만나 '두 남자 토익'이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노래하고 춤추고 퀴즈를 내며 토익 강의를 한 편의 쇼처럼 만들었죠. 팀을 꾸린 지 서너 달 만에 방학 시즌 수강생 규모에서 학원 내 '1티어' 강사 한 팀을 넘어서며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타강사로 강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경험은 인생의 자양분…두려워도, 일단 부딪혀보세요

"주변에 뭔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하든 못하든 시도를 해보세요. 실패하면 그것도 경험이 돼서 나중에 도움이 돼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러니 일단은 부딪혀보고 뭐라도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으니까, 그 경험들이 다 자양분이 돼서 나중에 뭔가를 하게 됐을 때 결정적으로 힘이 될 거예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권씨의 응원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두렵다면, 기존에 하던 일은 그대로 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2%씩만 더 써서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라는 조언도 곁들였죠. 지금도 하루 네 시간의 수면으로 일과 도전을 병행 중이라는 그는 아이돌이었던 과거를 밑거름 삼아 오늘도 강단에서 열정적으로 수업 중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