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보! 집안일 진짜 안할꺼야?" 끝나지 않는 가사노동 싸움 [그래도 가족]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0 18:22

수정 2026.04.20 18:26

"왜 나 혼자 힘들지…" 청소·빨래 끝없는 집안일
맞벌이 부부가 만든 집안일 분담표 효과는
여가부 조사 '가사노동' 아내 쏠림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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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이여서 더 쉽게 다투고, 또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활비, 육아, 집안일, 부모 부양처럼 매일의 일상이 가족 안에서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이웃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도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여보! 내가 어제 설거지 도와줬잖아!"

서울에 사는 30대 맞벌이 부부의 말다툼은 이 말에서 시작됐다. 남편은 퇴근 뒤 설거지를 했고, 아내는 그 표현을 문제 삼았다.



"도와준 게 아니라 같이 사는 집 일이잖아." 두 사람의 말다툼은 설거지 그릇 몇 개에서 끝나지 않았다.

장보기 목록을 누가 확인하는지, 아이 준비물을 누가 챙기는지, 세제가 떨어진 것을 누가 먼저 아는지로 이어졌다. 남편은 "말하면 하겠다"고 했고, 아내는 "말해야만 하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가사 갈등은 청소와 설거지 횟수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누가 먼저 기억하고, 일정을 챙기고, 빠진 일을 확인하는지가 갈등 이유가 된다. 집안일은 눈에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관리가 함께 돌아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분리수거와 청소…아내는 빨래와 아이 준비물

그런가 하면 맞벌이 8년 차인 30대 후반 A씨 부부는 가사 분담표를 만든 적이 있다.

남편은 분리수거와 청소기를 맡았다. 아내 A씨는 빨래와 아이 준비물을 챙겼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몇 주 지나지 않아 빈칸이 생겼다.

분리수거 날짜는 A씨가 먼저 알려줬다.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는 것도 A씨가 말했다. 아이 체육복을 빨아야 하는 날,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진 날, 어린이집 준비물이 필요한 날도 A씨가 먼저 알았다.

A씨는 "남편이 안 하는 건 아닌데, 내가 말해야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시키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남편도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퇴근 뒤 설거지를 하고, 주말에는 청소도 한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도 많다. 그러나 아내가 원하는 기준을 매번 알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뭘 해야 하는지 말해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이 말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뭘 해야 하는지 찾는 것부터 같이 해야 하는데, 그걸 설명하는 사람이 늘 나"라고 말했다.

A씨가 말한 집안일은 청소와 설거지에 그치지 않았다. 쓰레기봉투가 몇 장 남았는지 확인하고, 아이 약이 떨어졌는지 살피고, 계절이 바뀌면 옷을 꺼내는 일도 포함됐다. 부모님 생신 날짜를 챙기는 일도 A씨 몫이었다. 하나씩 보면 작지만 빠지면 바로 표시가 났다.

"말해야 움직인다" 속 터지는 아내…억울하다는 남편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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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서도 가사노동의 쏠림은 확인된다. 여성가족부가 2024년 4월 공개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의 가사노동 수행에서 '주로 아내가 한다' 또는 '대체로 아내가 한다'는 응답은 73.3%였다. 2020년 조사 70.5%보다 2.8%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주로 남편이 한다' 또는 '대체로 남편이 한다'는 응답은 1.4%였다.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한다'는 응답은 25.3%였다.

연령대별 차이는 있었다. 20대 부부는 56.4%, 30대 부부는 44.1%가 가사노동을 부부가 똑같이 한다고 답했다. 젊은 부부일수록 평등하게 나누는 비율은 높았지만, 전체 평균에서는 여전히 아내에게 가사노동이 몰렸다.

A씨 부부도 스스로는 "예전 세대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내가 야근하는 날 아이를 재웠고, 주말 장보기도 함께 갔다. 그러나 A씨는 집안일을 실제로 하는 것과 관리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같이 마트에 가도 장보기 목록은 내가 만든다"며 "남편은 카트를 밀고 물건을 담지만, 냉장고에 뭐가 없는지는 내가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와준다'…부부 갈등은 사소한 표현에서

A씨가 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말은 "도와준다"였다. 남편에게는 별뜻 없는 표현이었다. 아내가 주로 하던 일을 자신이 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A씨에게는 집안일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남편은 이후 "도와준다"는 말을 줄였다고 했다. 대신 "내가 할게"라고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표현을 바꿔도 갈등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가 먼저 알아차리고, 누가 마지막 확인을 하는지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가사 갈등은 돈 문제와도 이어진다. 맞벌이 부부는 둘 다 소득이 있다. 그러나 퇴근 뒤 집안일이 한쪽에 더 몰리면 "나도 돈 버는데 왜 집안일까지 더 하느냐"는 불만이 생긴다. 외벌이 가정에서는 돈 버는 사람과 집을 돌보는 사람의 역할을 두고 또 다른 갈등이 생긴다.

A씨 부부는 최근 다시 분담표를 고쳤다. 이번에는 청소, 설거지처럼 눈에 보이는 일만 적지 않았다. 아이 준비물 확인, 병원 예약, 공과금 납부일 확인, 장보기 목록 작성도 넣었다. 남편은 처음엔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느냐"고 했지만, A씨는 "그래야 보인다"고 강조했다.

가사노동, 덜 화내고 더 지혜롭게

분담표를 바꾼 뒤 싸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편이 맡은 일을 잊으면 A씨가 다시 말해야 했다. 그래도 달라진 점은 있었다. 남편은 자신이 맡은 일을 휴대전화 일정표에 등록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주말마다 다음 주 일정을 10분 정도 확인한다. 아이 준비물, 병원 예약, 장보기, 부모님 방문 일정을 함께 본다. 대단한 합의는 아니지만, 적어도 누가 어떤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서로 확인하게 됐다.

A씨 부부는 최근 분담표도 다시 만들었다.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뿐 아니라 세제 휴지 구입, 냉장고 식재료 확인, 계절 옷 정리도 항목도 항목에 넣었다. 새로 추가한 일도 남편은 휴대전화 일정표에 등록했다.
A씨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림이 울리니까 덜 화가 난다"며 "이제는 내가 말해야 하는 일이 조금 줄었다"고 말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