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노봉법과 진주 물류센터의 비극, 앞으로가 더 문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1 19:06

수정 2026.04.21 19:06

모호한 사용자성이 노사 갈등 증폭
소상공인 피해 등 사회적비용 키워
[진주=뉴시스]화물연대 집회 현장 찾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사진=독자 제공) /사진=뉴시스
[진주=뉴시스]화물연대 집회 현장 찾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사진=독자 제공) /사진=뉴시스
경남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변은 단순한 산업 현장의 불행한 사고가 아니다. 지난달 10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시행 이후 불거진 원·하청 교섭 갈등이 인명 피해로 드러난 예고된 비극이다. 이를 중재하고 제도적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정부와 법의 한계도 드러났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 것은 법 시행 이후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올 갈등의 예고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사용자성' 논쟁이다.

노란봉투법은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교섭 범위를 확대했디.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누가 사용자인가'를 판정하는 기준과 절차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실제로 화물연대는 BGF리테일이 자신들의 실질적 사용자라며 직접 교섭을 요구했고, 사측은 다단계 위탁계약 구조를 근거로 교섭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급기야 화물연대는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 절차조차 밟지 않은 채 실력행사에 나섰고, 사측 역시 대화의 여지를 닫아버렸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렇게 아전인수식으로 각자의 입장에 유리하게 법의 해석을 놓고 다투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법의 모호함이 이번 사태를 키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갈등의 피해가 노사 양측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파급된다는 점이다. 화물연대가 진주 외 다른 지역의 물류센터 봉쇄로 투쟁을 확대하면서 지방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상품 공급 차질로 직격탄을 맞았다. 일반적으로 간편식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출차가 막히면 전량 폐기해야 한다. 제품을 적기에 공급받지 못하는 편의점주들의 매출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일반 소비자도 원하는 간편식을 구할 수 없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노사 갈등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것이다.

이번 화물연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향후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쟁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수습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노란봉투법에 따른 원·하청 교섭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소상공인·개인사업자를 위한 별도의 소통채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같은 정부의 태도를 "방관적"이라고 비판한다. 노란봉투법에서 정하는 사용자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급변하는 노동 현실을 반영하려는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이 법이 만들어낸 새로운 권리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데 준비가 부족한 탓에 이번 문제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갈등은 앞으로 물류, 택배, 플랫폼 노동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법이 새로운 권리의 문을 열었다면 절차와 질서 역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일단 노사가 갈등과 충돌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은 없어야 한다. 노사 양측 간 소통채널을 늘려 대화를 통해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런 신뢰에 기반한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노란봉투법이 현장에서 갈등을 키우는 허점을 안고 있다면, 법을 만든 국회나 이를 집행하는 정부도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후속 입법과 행정지침을 가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