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서울 은평한옥마을 내에 '대한박물관(Korea Museum)'이라는 이름으로 개관 예정인 사설 박물관이 중국 역사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박물관'인데 중국 역사 수상해"… 주민 제보
22일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당근'에 따르면 은평한옥마을 인근 주민 A씨는 지난 15일 "오랜 기간 비어 있던 자리에 '코리아 뮤지엄' 돌비석이 세워져 있어 반가운 마음에 가봤더니 밖에 붙어 있는 역사 표가 진·한·당·송·명·청이더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이름은 '대한박물관', 영문으로는 '코리아 뮤지엄', 한자로도 한국박물관이라고 써 놓고 중국 역사만 써 있어 정체가 수상하다"며 "뭔지 아는 사람은 답해달라"고 했다.
공개된 박물관 외벽 안내문 사진을 보면 하·상·주, 춘추전국시대와 진·한·당·송·명·청 등 중국 역대 왕조사가 차례로 나열돼 있었다. 그 아래로는 병마용·당삼채·서화 등 전시품 목록이 적혔다.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은 "한국, 일본 및 세계 각지의 예술품도 일부 전시"라는 한 줄 설명이 전부였다.
외국인 발길 몰리는 한옥마을… 공공박물관과 도보 3분 거리
문제는 해당 박물관이 한국 전통 건축을 체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리는 은평한옥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은평한옥마을이 위치한 진관동의 외국인 방문자 수는 2022년 2만7105명에서 지난해 21만6232명으로 3년 새 8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해당 박물관에서 불과 도보 3분 거리에는 은평구가 운영하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구의 역사와 한옥 문화를 소개하는 공공 박물관이다. 은평한옥마을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주요 관광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의 외국인 관람객 수 역시 2024년 3367명(전체의 4.95%)으로 2023년 1378명(2.01%)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박물관이 인접한 만큼, 'Korea Museum' 간판을 보고 찾아온 외국인 방문객이 한국 역사 전시 시설로 오인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은평구 진관동 일대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금성대군을 기리는 '금성당'이 자리한 조선시대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금성당은 전국에 세 곳뿐이던 것이 현재는 은평구 진관동 금성당 한 곳만 남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은평구청, 건축법 위반·표시광고법 위반 카드 '만지작'
논란이 커지자 은평구청은 건축법 위반 등을 근거로 한 행정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해당 박물관 부지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 구역으로, 건축법상 '문화 및 집회시설'로 분류되는 박물관은 입주할 수 없다는 게 은평구 측 설명이다.
은평구청은 지난 17일 현장 점검을 통해 건축물대장상 용도와 실제 사용 형태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다음 달 초 개관 즉시 현장 확인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Korea Museum', '대한박물관' 명칭을 쓰면서 실제로는 중국 역사 유물을 주로 전시해 방문객이 한국 문화 전시 시설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도 박물관 측에 설립 목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박물관 규제 공백…"명칭·전시 내용 사실상 자유"
다만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상 사립박물관은 명칭 사용이나 전시 내용이 사실상 자유에 가까워 제재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에 등록해야 역사 왜곡 소지가 있을 때 등록 취소가 가능한데, 등록 자체가 선택사항이며 취소되더라도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운영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대한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못 쓰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은 어디 가고 진·한·당·송이 웬 말이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한옥마을에 이런 걸 세우다니 소름 돋는다",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문제" 등의 반응을 보였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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