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난 정치 같은거 몰러, 장사 잘되면 성군이지"...어둑해진 골목, 좌판 치우지 못하는 노인들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6 06:00

수정 2026.04.26 06:00

[서울 청량리 시장 골목골목 좌판 펼친 노인들]
세금·도로점용 문제까지 얽힌 길 위 노인들의 하루 벌이
주변 상인들도 "이해는 하지만... 가게 앞 복잡해서 싫죠"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한 시장 인근 길가에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콩나물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한 시장 인근 길가에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콩나물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도시의 길가와 시장 주변에는 이른 시간부터 자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건 몇 개와 낡은 도구를 앞에 두고 하루를 버티지만, 그 자리는 누군가에게 통행 불편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생활비를 보태는 일터가 됩니다. 길 위의 작은 좌판 앞에서 생계와 단속, 세금과 책임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콩나물 한 봉지에 얼마예요.", "천 원만 줘요. 그냥 가져가."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한 시장 주변 골목 곳곳에는 작은 좌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골목에서는 노인이 콩나물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플라스틱 깔판 위에 올려두고 지나가는 손님을 기다렸다.

다른 골목에서는 또 다른 노인이 노란 상자 주변에 구두약과 솔, 라이터, 수선 도구를 펼쳐놓은 채 신발을 고치고 있었다.

간판도 가격표도 없었지만 시민들은 걸음을 늦췄다. 5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마트보다 싸서 지나가다 한 봉지씩 산다"고 했다. 구두수선 좌판 앞에 선 한 시민은 "정식 가게보다 바로 맡길 수 있어 편하다"면서도 "사람이 몰릴 때는 길이 좁아져 불편하다"고 말했다. 먹거리 좌판을 두고는 "싸서 사긴 하는데 먹고 탈이 나면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

청량리 일대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콩나물과 나물, 채소를 조금씩 놓고 파는 노인들이 있고, 구두 굽을 갈거나 운동화 끈을 손보는 수선공도 있다.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시장 풍경이지만, 주변 상인들에게는 임대료와 세금을 내는 점포와의 형평성 문제로 이어진다.

콩나물 한 봉지에 담긴 하루 벌이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한 시장 인근 길가에 구두수선 도구와 신발들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23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한 시장 인근 길가에 구두수선 도구와 신발들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노인들이 길 위에 나오는 이유는 생계와 맞닿아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65~79세 고령자 가운데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은 57.6%였다. 일을 원하는 이유로는 '생활비에 보탬'이 51.3%로 가장 많았다. 고령층이 일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생활비인 만큼, 길 위의 작은 좌판도 단순한 부업이나 소일거리로만 보기 어렵다.

현장에서 본 좌판은 거창한 장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시장 주변 좌판은 콩나물 한 봉지, 채소 몇 단, 낡은 공구 상자 하나가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가게처럼 물건을 쌓아두거나 사람을 부를 간판도 없었다. 손님이 멈추면 비닐봉지를 벌려 보이고, 신발을 맡기면 상자 위 도구를 집어 수선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구두를 수선하는 70대 노인은 기자에게 "상황 봐서 그때그때 장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벌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날이 많다. 그냥 이렇게 종일 장사를 한다"고 했다. 장사가 잘돼도 하루 벌이가 크지 않고, 날씨가 나쁘거나 단속이 있으면 그마저도 끊길 수 있다.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니, 채소 파는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내가 무슨 그런 걸 알어. 그냥 오늘 가져나온 거 다 팔고 들어가면 그게 최고지." 그러면서 요즘은 다 팔고 들어가는 날들이 많지 않다며 주름진 얼굴을 웃어보였다.

임대료를 내고 가게를 얻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길가 좌판은 선택지가 많지 않은 일터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거나, 정해진 근무 시간을 버티기 힘든 이들은 몸이 허락하는 시간만큼이라도 벌기 위해 시장 주변 빈자리를 찾는다. 다만 주변 상인들은 가게 앞을 막는 좌판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 상인은 "안타까운 건 알지만, 가게 앞을 막으면 우리도 장사를 못 한다"고 했다.

길에서 팔아도 세금 문제는 남는다

길거리 좌판을 두고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세금이다. 길에서 판다고 해서 세금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은 사업자는 사업장마다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며, 사업을 시작한 날부터 20일 이내에 관할 세무서 등에 신청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장사를 통해 소득이 생기면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품목에 따라 부가가치세 적용은 달라진다. 콩나물이나 채소처럼 가공되지 않은 식료품은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 국세청은 미가공식료품 등 생필품 판매처럼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사업만 하는 경우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의무가 없다고 설명한다.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지, 소득세 문제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두수선 좌판은 농산물 좌판과 성격이 다르다. 물건 판매가 아니라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선 수입이 있으면 장사 형태와 매출 규모에 따라 사업자등록,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정된 장소에서 영업한다면 도로점용 허가 대상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도로법은 도로를 점용하려는 경우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다.

작은 좌판 앞에서 갈린 마음…청량리 골목의 하루

여기에 먹거리 좌판에는 위생과 책임 문제도 따라붙는다. 영수증이나 상호 없이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먹고 탈이 났을 때 판매자를 다시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식품 관련 불법 행위는 부정·불량식품 신고전화나 관할 구청에 신고할 수 있지만, 현장 좌판에서는 판매자 확인부터 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좌판이 놓인 자리가 길 위라는 점도 갈등을 키운다. 시장 주변은 손수레와 오토바이, 보행자가 함께 오가는 공간이다. 물건이 인도 한쪽을 차지하면 시민들은 차도 쪽으로 비켜 걷거나 좌판 사이를 돌아가야 한다. 위생과 책임 문제에 보행 불편까지 겹치면서 노점 정비 요구도 반복된다.

이렇다 보니 동대문구는 청량리 일대 노점 정비를 이어가고 있다. 구는 2025년 1월 제기동역에서 청량리역까지의 불법노점·미운영 거리가게 200개소를 정비했다고 밝혔다. 제기동과 청량리동 일대는 경동시장과 청량리종합시장 등 전통시장이 밀집해 노점이 형성되기 쉬운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정비 대상에는 보행로를 과도하게 점유한 노점, 친족이 2개 이상 운영하는 기업형·가업형 노점, 횡단보도와 소화전, 버스정류장을 점유한 노점 등이 포함됐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보유해 생계형으로 보기 어려운 노점도 정비 대상으로 봤다.

다만 기준을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콩나물 한 봉지와 구두수선 도구만 놓인 자리까지 어디까지 단속하고, 어디까지 생계형으로 볼 것인지 고민으로 남는다. 한 시민은 "불편한 건 맞지만, 저 나이에 저렇게 나와 있는 걸 보면 뭐라고만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세금과 위생, 책임 소재가 얽힌 작은 좌판 앞에서 시장 골목의 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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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