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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협상판 깨졌다…경제와 정치의 치킨게임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6 12:41

수정 2026.04.26 12:40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이번 주말 열릴 예정이던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 협상이 전격 취소됐다. 양측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유지한 채 정면 대치를 이어가며 사실상 치킨게임 국면에 들어갔다. 미국과 이란 모두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차단해 경제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고, 이란은 국제 유가 상승이 미국 내 물가 부담을 키워 결국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 협상 취소…다시 멀어진 종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이란 측과 만나려던 우리 대표단의 방문 일정을 방금 취소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 특사를 이번 주말 파키스탄에 파견해 이란과 2차 종전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날 파키스탄에 도착했던 이란 협상단도 곧바로 현지를 떠났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파키스탄 방문 결과에 대해 "종전의 실행 가능한 틀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미국이 외교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협상 재개의 여지는 남겼지만 대화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 지도부의 내부 혼란도 거론했다. 그는 "(이란) 지도부 내부에는 엄청난 내분과 혼란이 있다"며 "그들조차 누가 실권을 쥐고 있는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란 고위 관리들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이를 부인했다.

왜 틀어졌나…제안 수준·협상 격에 불만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 협상이 취소된 배경에는 이란 측 제안의 실질적 진전 부족과 협상 대표단의 급에 대한 미국 측 불만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란이 미국 측에 전달한 종전 제안서에 대해 "더 나았어야 하는 문서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사단 파견 취소 이후 이란이 새 제안을 내놨지만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것을 제안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 조건, 특히 고농축 우라늄 처리와 향후 핵 프로그램 제한 문제에서 이란이 실질적인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협상 상대의 급도 문제로 지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협상단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까지 장거리 이동을 준비했지만, 정작 협상 테이블에 나올 이란 측 인사들의 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15~16시간씩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 나라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최고위급 정치적 결단이 가능한 인물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만 협상 가능성 자체를 닫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카드는 우리가 갖고 있고 그들에겐 아무 카드도 없다"며 "그들이 대화를 원한다면 전화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제냐 정치냐…누가 먼저 무너지나


미국과 이란의 대치는 결국 누가 먼저 버티다 꺾이느냐를 가르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은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 경제의 숨통을 조이며 협상장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고, 이란은 미국의 정치적·시간적 한계를 계산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CNN에 따르면 현재 이란 경제는 이미 전쟁 충격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지에서는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약 200만명의 고용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식료품과 의약품 가격은 3~4배 급등했다. 수도 테헤란 시장 공급은 유지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체감 경제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란 경제가 고통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히 붕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싱크탱크 보르스 앤 바자르의 에스판디아르 바트망헬리지는 "이란은 이미 트럼프 1기 당시 최대 압박 정책을 경험했고 원유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버텨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이란은 약 3000만배럴 규모의 추가 저장 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퇴역 유조선을 임시 저장시설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면서 최소 2~3개월 추가 버티기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의 계산은 단순하다. 경제적 고통보다 미국의 정치적 압박이 먼저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전쟁 장기화에 따른 미국 내 피로감 확대와 정치적 역풍에 직면해 있다.
특히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상승과 물가 압박이 이어질 경우 정치적 부담은 급격히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란 입장에서는 '경제가 먼저 무너지느냐', 미국 입장에서는 '정치가 먼저 무너지느냐'의 싸움이 됐다.
양측 모두 상대의 한계를 기다리며 시간을 무기로 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