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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장은 바닥인데 지출 펑펑, 구조개혁 실행 결단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6 18:10

수정 2026.04.26 18:31

반도체 호황 착시 속 성장률 정체
고통 감수한 개혁 타이밍 살려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뉴스1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뉴스1
한국 경제에 이중 경고등이 켜졌다. 경제성장 잠재력은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데 재정 지출은 갈수록 늘어난다는 신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 1.71%에 이어 내년 1.57%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특히 내년 4·4분기에는 1.52%로, 사상 최저치를 다시 갈아치울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2012년 3.63%이던 잠재성장률이 15년째 한 해도 빠짐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노동·자본·기술 등 한 나라 경제가 지닌 근본 체력을 가리킨다. 한국 경제의 저력이 바닥났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지출 압력은 고조되는 형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연금 지출이 2025년부터 5년간 국내총생산(GDP)의 0.7%p만큼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20개국(G20) 선진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 속도다. 같은 기간 일본의 연금 지출 증가율은 0.2%, 독일은 0.3%, 미국도 0.5%에 그친다. 한국만 압도적인 속도로 연금 부담이 불어나는 것이다.

성장 엔진은 식어가는데 복지 지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조가 우리 경제의 본모습이다. 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처럼 착각에 빠진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간 국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이 노력해온 결과로 얻은 과실을 따먹는 데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듯하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 추세인데도 성장 신화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근 주가나 수출 지표가 좋은 건 반도체 특수 효과가 매우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가령 올 1·4분기 GDP 성장률이 1.7%를 기록한 것은 반도체 호황 효과가 컸다. 아울러 지난해 사상 최저 수준의 성장률이 빚어낸 기저효과가 맞물린 결과로 봐야 한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성장률도 단숨에 급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늦기 전에 경제구조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개혁의 고삐조차 당길 수 없다. 이미 한국 사회는 그간 쌓아온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자는 요구가 사방에서 분출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단기 처방과 나눠주기 공약이 구조개혁 의제를 덮어버린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들도 개혁에 거세게 저항한다.

선진국병에 걸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역사적 사례들이 적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따먹으며 안도하는 순간이 역설적으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최근 통화정책 수장들의 잇단 쓴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창용 전 한은 총재는 최근 이임사에서 "교육, 주거, 균형발전, 청년고용, 노인 빈곤 등 우리 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과제를 계속 연구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한 바 있다.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도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의 구조개혁을 주문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한목소리로 구조개혁을 외치고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이다.
말로 떠들기만 해서는 성장률이 오르지 않는다. 지금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개혁을 밀어붙이는 국가적 결단이 요구된다.
반도체 호황 덕분에 누리는 풍요의 기간을 개혁의 발판으로 삼지 못한다면 호황 뒤 맞닥뜨릴 현실은 훨씬 가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