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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로 돌아간 국제질서… 안보 등 실용외교 새 전략 짜야"[논설실의 뉴스 진단]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9 18:39

수정 2026.04.29 18:39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이란戰 정세 속 韓 대응과 방향’
규범에서 힘의 논리로 전환된 국제사회
韓 외교 최우선 과제는 국가 안보 확보
美에 한국의 전략적 효용 가치 증명해야
조선·원전 등 美와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도 대폭 강화해야
日과 협력은 양국 전략적 위상 높일수 있어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와도 관계 확대 필요
中엔 한미동맹 우선을 조용히 분명히 표명
중동사태 역시 국익 관점에서 美 동맹 우선
한국엔 원유수급·대북억제력 약화 문제 커
자원 보유국과 외교 강화해 공급망 다변화
北은 이란 지켜보며 핵무장 의지 더 키울 것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중동 사태와 관련한 우리의 외교적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중동 사태와 관련한 우리의 외교적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중동 사태로 국제정세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국제유가와 물가 급등은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힘을 앞세운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까. 아산정책연구원 윤영관 이사장을 만나 견해를 들어보았다.

―힘의 논리가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규칙이나 규범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힘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구한말 당시의 국제정치와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도 문제였지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주도하다 리더십을 포기한 게 결정적 이유다. 핵을 가진 북한이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최우선순위는 국가의 생존 문제, 즉 안보다. 국방력을 신속히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이 특별한 나라이기 때문에 꼭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래적 관점에서 동맹을 바라보는 지도자이기 때문에 한국의 효용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바로 조선업이나 원전, 반도체, 방산 등 우수한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을 돕겠다는 의지다. 이를 레버리지로 활용해서 미국이 방위공약을 지켜주고 원자력협정 개정이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설 등의 문제에 협력적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레버리지를 어떻게 구체적인 외교 결과로 도출해 낼 것이냐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협력·공조할 국가는.

▲한국처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지속되기를 원하고 민주주의 국가인 나라들과 연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국가가 일본이다. 한국과 입지가 비슷한 동병상련의 국가다. 양국이 협력하면 각자의 전략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도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공급망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나라가 인도다. 인도는 앞으로 국제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인구가 14억7000만명이나 되는 민주주의 대국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한·인도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정부의 실용외교는 맞는 방향으로 보인다.

▲앞서 김대중 대통령 때도 실용외교를 했다고 본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외교 목표를 달성해 나가고, 국가 이익을 추구한 사례일 것이다. 이념과 가치가 아니라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외교가 실용외교다. 학자들은 국익의 첫번째 우선순위를 안보, 두번째를 경제적 번영, 세번째를 국가의 위신으로 꼽는다. 한미중 관계에서 보면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생존, 안보를 위해서는 한미 동맹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를 중국의 지도자들한테도 분명하고도 조용하게 표명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이해를 구하면서 중국과도 잘 지내고 싶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다.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고, 한국도 똑같은 입장이다. 그다음에 호혜와 상호 존중의 원칙하에서 양국의 정치·경제·문화적 협력 관계를 다질 필요가 있다.

―중동 사태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첫째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원유 수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문제다. 또 주한미군 기지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 사드 미사일이 반출됐다. 대북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중대한 문제다. 다음은 한미 양자외교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협조적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주요 타깃은 유럽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불이익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우리의 스탠스는.

▲역시 국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에너지 공급, 건설 협력 등 경제적 분야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란 문제 때문에 미국과 관계가 악화된다면 이란과의 관계 악화로 보는 피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안보를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동맹인 미국에 둘 수밖에 없다.

―비핵화는 인류의 목표인데 이란의 핵무장은 반대해야 하지 않나.

▲대한민국은 전 세계 191개국이 참여한 핵비확산조약(NPT) 당사국이다. 한국은 이란의 핵개발을 반대할 수밖에 없고,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이 돼야 한다. 그러나 이란의 핵개발을 어떻게 저지할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협상이냐,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처럼 군사적 공격이냐다. 이란의 핵 문제에 관해 2년 정도 어렵게 협상을 해서 2015년 7월에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 타결됐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8개국이 체결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이란의 협정 이행에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미국이 탈퇴하고 경제제재를 재개했다. 이란도 다시 핵개발에 나서 현재 상황까지 왔다. 비핵화를 위해 군사행동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JCPOA 합의보다 결과가 좋아야 될 것이라는 부담을 미국도 갖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공격받는 이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북한은 핵무장 의지를 더 강화할 수 있다. 북한은 이란이 핵무장을 완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전에도 북한이 핵무장에 집착하게끔 만든 사건들이 있었다. 치명적인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1994년 부다페스트 의정서가 체결됐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하면 미국·영국·러시아가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그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폐기했다. 그런데 합의의 당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이런 상황들을 보고 핵개발을 잘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제정세가 전반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평화적 제스처에도 적대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주장하며 대남 적대정책을 심화하고 있다. 남북대결 구도가 고착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결·긴장 국면에서는 사소한 우발적 사고가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적 사례가 있다. 파국적 상황을 막으려면 최고지도자나 군사당국 간에 핫라인이나 소통채널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아주 독특한 입장이다.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과의 대화에 거부감이 있었다. 트럼프는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대화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래도 북미대화가 진행되면 남북 간 긴장도 약화될 수 있을 것이다. 북미협상에 진전이 있는 경우에는 한미 정상 간의 긴밀한 소통과 공동보조로 한국의 안보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는 게 중요한 외교 목표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핵무장 주장도 나오지 않았나.

▲정부 정책의 선택은 항상 비용과 편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냉철하게 따져서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득은 최대화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핵무장이나 핵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편익과 비용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따라 변한다. 미국이 안보동맹을 폐기하거나 방어공약을 철회할 때 핵개발은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다. 지금은 전술핵무기 등 다른 옵션이 더 편익이 많고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대만 문제는 우리가 개입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 같다.

▲대만 문제는 한반도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북한이 남침했을 때 미국이 우려했던 것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다. 그래서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미 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 침공 가능성을 차단했다. 거꾸로 대만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지면 한반도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그 경우에 한국은 동맹인 미국과 협조하되 한국을 방어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선 급한 게 북한이니까. 미국도 이해할 것이다. 그런 경우 한국이 미국과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협력할지는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할 거다.

―중동 사태는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자유무역과 개방경제라는 규범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물자 공급을 정치적 무기로 악용하고 있다. 한국은 무역의존도(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입 규모)가 87% 정도로 높고, 제조업 비중도 크다. 공급망 문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무역과 투자, 경제 협력 관계를 다변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앞에서 말한 글로벌 사우스, 즉 인도·브라질·중남미·아프리카 등과의 외교 관계를 확대하고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리튬과 희토류는 반도체와 이차전지의 핵심 광물이다. 리튬은 칠레가 세계 매장량 1위고, 니켈은 인도네시아가 매장량 1위다. 희토류는 아프리카 잠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이런 대체 국가들을 많이 확보해 나가야 한다. 광물 파트너십(MSP)을 강화하고 현지 가공시설 투자도 다변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쿠팡 문제와 관련해서 한미 간에 갈등이 있는데.

▲한국이 투자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자동차 관세를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해서 사달이 난 적이 있지 않나. 일본은 적극적이며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쿠팡 문제는 양국 시각에 좀 차이가 있다. 미국은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소통이 충분하게 되지 않아서 미국 쪽에서는 불만으로 쌓이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한미 안보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행정부 못지않게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이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구한말로 돌아간 국제질서… 안보 등 실용외교 새 전략 짜야"[논설실의 뉴스 진단]

■윤영관 이사장 약력 △전주고·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외교통상부 장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현)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