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 국민대학교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그러나 오늘날, 그 기다림의 시계는 더 뒤로 밀려났다. 지구 온난화와 극단적인 기후 변화는 우리가 알던 '계절의 문법'을 파괴했다.
산림공직자들이 현장에서 기록한 수기들을 들여다보면 그 고뇌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지방자치단체 산불담당관은 이렇게 썼다. "바람이 초속 10m를 넘는 날이면 심장이 요동친다. 밤잠을 설친 채 무전기를 머리 맡에 두고 잠든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 봄은 꽃구경의 계절이 아니라 연기 냄새에 취해 사는 계절이다. 밤꽃 향기가 그리운 이유는 단 하나, 그 향기가 나야만 내가 사랑하는 이 산이 비로소 불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진화 대원의 글에는 상실감이 짙게 배어 있다. "수십 년간 애지중지 가꾼 숲이 한순간의 담뱃불에 재(災)가 되는 것을 볼 때, 자식을 잃은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희망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이처럼 산림공직자들에게 산불 예방과 진화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소명이자, 매일같이 이어지는 신경전이다. 특히 올해처럼 선거가 치러지는 해에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사회적인 어수선함 속에 행정력이 분산될 것이라는 오판으로 산림 인접지에서의 무분별한 소각 행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고성능 진화 헬기가 도입되고 인공지능(AI)이 산불 발생을 감시하는 시대가 됐지만, 산불은 여전히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최근 산불 발생 원인의 80%이상이 논·밭두렁 소각, 등산객의 부주의, 쓰레기 소각 등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림은 우리 모두의 공공재다. 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우리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거대한 생명 저장고다. 한 번 소실된 숲이 제 모습을 찾는 데는 30년, 토양 생태계까지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산림공직자들의 헌신만으로는 이 거대한 자연을 지켜낼 수 없다.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드린다. 산행 때는 인화 물질을 소지하지 않는 것, 산림 인접 지역에서 농산 폐기물을 태우지 않는 것 등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 우리 숲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 조심 기간이 6월까지로 연장된 만큼, '이제는 괜찮겠지'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또한, 산불을 발견했을 때 즉시 신고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도 절실하다. 산림공직자들이 간절히 밤꽃 피는 계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단지 쉬고 싶어서가 아니다. 산불이라는 국가적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히 지켜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머지않아 산야에 밤꽃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산림공직자들은 비로소 땀에 젖은 방화복을 벗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짧은 안식에 들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등성이를 누빌 것이다. 우리의 푸른 산림이 유지되는 것은 그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과 헌신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 모두가 '명예 산불 감시원'이 돼주기를 기대한다. 밤꽃이 피어 대지가 생명력으로 충만해지는 그날까지, 우리 강산의 푸른 희망을 함께 지켜나가자. 밤꽃 향기가 만연한 6월의 평화는 바로 우리 국민 모두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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