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우주시대 필요한 '축적의 시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4 18:34

수정 2026.05.04 18:34

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
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
우주시대 초기 나사(NASA)에 근무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2016년 개봉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백인 남성들 위주의 과학자 집단이 모인 나사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은 전산원과 사무보조원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인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이 다른 건물의 화장실로 뛰어가는 장면은 1960년대 초반의 미국 사회를 잘 조명해 준다.

1964년 미국 민권법이 발효되기 전까지 여성과 흑인을 차별하여 관공서, 식당,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출입구와 공간을 분리하였으며 대부분의 교육기관이 여성과 흑인의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

'존슨'은 수학에 탁월한 천재성을 인정한 법원의 특별허가를 받아 1933년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1953년 계산원으로 나사에 입사한 존슨이 33년을 근무하면서 아폴로 계획을 비롯한 다양한 유인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가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뒤늦게 조명된 바 있다.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앨런 셰퍼드와 최초의 궤도비행을 한 존 글렌의 임무에서부터 아폴로 착륙선에 이르기까지 유인우주비행에 필요한 궤도역학의 계산을 직접 손으로 풀어내었다고 한다. 존슨이 나사에 근무한 지 만 30년이 되던 1983년이 되어서야 미국은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인을 배출하게 된다. 이는 세계 최초의 여성우주인을 배출한 옛 소련에 비해 무려 20년이나 늦은 기록이다. 현재까지 인류가 우주에 건설한 가장 큰 구조물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은 2000년 완성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26개국에서 292명의 우주인(여성이 75명)이 다녀갔다.

지난 만우절 저녁에 발사되었던 '아르테미스 2호'는 지구에서 40만㎞ 이상을 벗어나 역대 최장거리의 유인우주비행 기록을 세우고 10일 후 성공적으로 귀환한 바 있다. 또한 우주비행사 전원이 젊은 백인 미국인 남성으로 구성됐던 아폴로 계획과 달리 4명의 우주비행사 중 여성인 '크리스티나 코크'와 미 해군 출신의 흑인 '빅터 글로버'가 430㎞ 이상을 벗어난 최초의 여성과 흑인으로 새 이정표를 남겼다. 둘 다 20대에 항공우주 전문분야에서 관련 학위와 연구경력을 축적하였으며, 30대 중반에 나사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이력이 있다. 6개월 이상 ISS에 머문 기록을 보유하였으며, 특히 코크는 328일을 ISS에 체류하여 여성으로는 단일연속 우주 최장 체류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가 배출한 유일한 우주인인 '이소연'도 최종 후보로 선발된 지 2여년 만에 10일간 ISS에 체류하여 세계에서 49번째 여성우주인의 타이틀을 얻었다. 10일 다녀온 경험으로 수년간 강연만 다녀야 했던 그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서울공대 교수들이 공저한 '축적의 시간'이란 서적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우리 산업이 압축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이 부족해 산업 전반에 성장의 한계와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르테미스의 성공으로 인해 본격화될 유인우주시대를 대비하고 과거 우주인 배출사업의 전철을 거울 삼아 지금부터라도 '축적의 시간'을 가동시켜야 한다.

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