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쿠팡의 책임

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4 18:37

수정 2026.05.04 18:37

서영준 경제부 차장
서영준 경제부 차장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2021년 대기업집단 지정 이후 5년 동안 이어온 법인 동일인 체제가 마무리된 것이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결국 칼을 뽑아 든 셈이다.

그동안 외국인 총수 역차별 논란에도 쿠팡의 손을 들어주던 공정위가 왜 지금 시점에 판단을 바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쿠팡 내부의 거버넌스 구조와 책임경영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쿠팡은 그간 김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과 친족의 경영 비참여를 근거로 동일인 지정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번 공정위의 판단 근거는 명확했다. 바로 김 의장의 친동생인 김유석 부사장의 실질적 경영 참여다. 쿠팡은 김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직원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사실상 한국법인의 핵심사업을 총괄하면서 고액 보수를 받는 등 경영상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러한 실질적 지배관계를 간과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한 데는 쿠팡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고 당시 보여준 쿠팡의 대응은 소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쿠팡은 미국 상장사임을 내세워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아울러 미국 정치권을 통한 로비가 통상 문제로 비화되며 우려를 자아냈다.

쿠팡은 미국 상장기업이다. 이에 국내법보다는 미국 상장규제에 더 민감할 수도 있다. 투자자를 우선시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가 국내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기업 규모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보다 규제회피를 우선시하는 모습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공정위의 결정에 쿠팡은 행정소송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가능성을 언급하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김 의장의 실질적 지배력이 입증된 상황에서 이어지는 법적 공방은 자칫 기업의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쿠팡은 그동안 상황에 따라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정체성을 선택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쿠팡에 필요한 것은 날 선 소송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거버넌스의 쇄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syj@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