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G5서 밀린 인도… 힘 잃은 루피화에 중동發 악재까지 ‘발목’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5 18:43

수정 2026.05.05 18:42

루피화 가치 전년比 11% 급락
달러 환산 경제규모 ‘뒷걸음질’
유가상승에 제조업 지수도 타격
2031년 G3 탈환 낙관론 우세
청년실업·빈부격차 등 과제로

G5서 밀린 인도… 힘 잃은 루피화에 중동發 악재까지 ‘발목’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4대 경제 대국' 진입을 눈앞에 뒀던 인도가 돌연 대내외 악재에 직격탄을 맞으며 '빅 5'에서 미끄러졌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경제전망에서 인도가 다시 영국에 밀려 세계 6위로 내려앉은 가운데, 최근 발발한 이란발 중동 전쟁까지 겹치며 '장밋빛 경제 낙관론'에 제동이 걸리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루피화 약세 등 기술적 요인에 따른 일시적 후퇴로 분석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청년 실업과 빈부 격차 등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장기 성장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4위권 진입’ 예상하더니 오히려 하락

5일 IMF의 '4월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세계 4위 안착이 예상됐던 인도는 2025~2026년 회계연도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약 3조9160억달러(약 5781조1908억원)로 그쳐 6위로 밀려났다. 지난해 4월 전망에서 일본을 제치고 4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 비교하면 예상치보다 무려 두 계단이나 내려간 셈이다.



순위 하락의 1차적 요인으로는 환율이 지목된다. IMF는 국가 간 경제 규모를 비교할 때 달러 환산 명목 GDP를 기준으로 삼는데, 달러 대비 루피화 가치가 2024년 84.57루피에서 올해 92.59루피까지 약 11% 평가절하되면서 달러 기준 경제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인도 유력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는 "국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더라도 달러 환산 규모는 줄어드는 '환율의 함정'에 빠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인도 정부가 GDP 산출 기준연도를 2011년에서 2022년으로 변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산출 방식이 정교해지면서 명목 GDP 총액이 기술적으로 하향 조정된 것이다. 아룬 싱 던앤브래드스트리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순위 하락은 통계 조정과 환율 변동에 따른 결과일 뿐,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세계 3위'의 꿈은 2031년으로

그러나 인도 내부에서는 낙관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V. 아난타 나게스와란 인도 정부 수석 경제 고문(CEA)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GDP 순위는 달러 환산 기준이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루피화 약세는 경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불확실성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질 성장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2027년 4위 탈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금융권 역시 인도의 세계 4위 복귀 시점을 2027~2028년으로 보고 있으며, 독일을 넘어서는 세계 3위 진입 시점은 당초보다 1년가량 늦춰진 2030~2031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인도 안팎에서는 과도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윌리엄 페섹 아시아 경제 전문가는 포브스 기고에서 "모디 정부가 '메이크 인 인디아'를 내세운 지 12년이 지났지만 제조업 비중은 여전히 목표치(25%)에 못 미치는 17%대에 머물러 있다"며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과 낮은 1인당 GDP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도의 GDP 총량은 일본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1인당 소득은 일본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질적 성장'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RBI) 총재도 "단순한 '수치상의 승리'를 넘어 외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경제 체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유가상승이 경제 최대 걸림돌"

향후 인도 경제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로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중동발 유가 상승이 꼽힌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EY 인도 법인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인도의 GDP 성장률은 6%대까지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은 6%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우라브 모다 EY 인도법인 이사는 "인도는 그동안 견조한 성장세와 수입선 다변화로 고유가를 버텨왔지만, 유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물가와 물류 비용 전반에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상 이번 위기는 단순한 순위 변동을 넘어 실물 경제의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HSBC은행에 따르면 인도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에너지 비용 상승과 공급 제약의 영향으로 4년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산업 현장의 둔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rejune1112@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