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개체수 위협받는 '남방큰돌고래'...지난해 5마리 폐사 추정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07 09:11

수정 2026.05.07 09:38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 120마리 안팎 서식
대정읍 신도리 첫 해양생물보호구역 지정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전망대·포토존 조성 추진
관광선박 50m 이내 접근 금지… 현장 관리가 관건
파나마·멕시코 자연권 사례도 주목
제주특별법 개정이 생태법인 첫 관문

지난 3월 1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제주 해녀와 유영하고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해양보호생물로 현재 개체 수는 120마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다큐제주·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제공
지난 3월 1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제주 해녀와 유영하고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해양보호생물로 현재 개체 수는 120마리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다큐제주·제주대학교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연안에 남은 남방큰돌고래 120마리 안팎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논의가 제도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배를 타고 돌고래를 따라가는 관광을 줄이고 육상에서 기다리며 관찰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흐름에 남방큰돌고래의 서식권을 법적으로 대변하는 '생태법인' 논의가 맞물렸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2억원 규모의 모금을 추진하고 있다. 기부금은 돌고래 전망대와 생태관광 포토존 조성 등에 쓰인다. 돌고래 서식 환경을 방해하지 않고도 관찰할 수 있는 육상 중심 생태관광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해양보호생물이다. 해양수산부는 2025년 4월 11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역 2.36㎢를 남방큰돌고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남방큰돌고래 서식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국내 첫 사례다.

위험 신호도 분명하다. 2024년 기준 제주지역 남방큰돌고래 폐사 건수는 16건으로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많았다. 2025년에는 제주 해역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남방큰돌고래 5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폐어구에 걸린 새끼 돌고래 사체가 발견되면서 연안 오염과 어업 활동, 선박 관광이 돌고래 생존에 미치는 영향도 다시 쟁점이 됐다.

■ 보호구역 지정됐지만 현장 위험은 여전

지난 3월 19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유영하고 있다. 신도리 해역은 2025년 4월 11일 남방큰돌고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지정 이후 남방큰돌고래 논의는 선박 관광 관리와 육상 관찰 전환에서 생태법인 제도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19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연안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유영하고 있다. 신도리 해역은 2025년 4월 11일 남방큰돌고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지정 이후 남방큰돌고래 논의는 선박 관광 관리와 육상 관찰 전환에서 생태법인 제도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방큰돌고래 관찰 규정은 이미 마련돼 있다.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선박의 돌고래 50m 이내 접근을 금지한다. 돌고래 300m 안에는 선박 3척 이상이 동시에 접근할 수 없다. 드론을 이용한 관찰도 바다 표면 30m 이내 저공비행이 금지된다.

거리별 속도 제한도 있다. 돌고래 750m~1.5㎞ 구간에서는 10노트 이하로 속도를 줄이고 300~750m 구간에서는 5노트 이하로 낮춰야 한다. 300m 이내에서는 스크루를 멈춰야 한다. 돌고래를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문제는 현장 집행이다. 해수부도 사진·영상자료만으로 위반 사실을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워 과태료 부과가 쉽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규정이 있어도 관광선박 접근, 해양쓰레기, 폐어구, 연안 개발 압력이 반복되면 보호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생태법인 논의는 이 빈틈에서 출발한다. 보호구역이 '어디를 지킬지'를 정한다면 생태법인은 '누구의 이름으로 무엇을 지킬지'를 정하는 장치다. 남방큰돌고래가 직접 행정기관에 의견을 내거나 법정에 설 수 없기 때문에 법이 정한 대리인과 후견기구가 돌고래의 이름으로 서식지 보전과 피해 방지를 요구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생태법인은 돌고래에게 사람과 같은 권리를 주자는 뜻이 아니다. 생존, 서식, 이동, 번식, 건강한 해양환경에 관한 권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대신 행사할 공적 장치를 만들자는 제도 설계다. 감성적 보호 캠페인을 상시 관리 체계로 연결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첫 관문은 제주특별법 개정이다. 지역조례만으로 보호 캠페인과 지원사업은 할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에게 법적 지위를 주고 행정절차 참여권이나 소송 대리권을 인정하려면 법률 근거가 필요하다. 지정 대상, 권리 범위, 대리기구, 재원, 정보공개, 책임 구조가 법에 담겨야 한다.

전문가들도 생태법인을 자연보호 구호보다 법과 행정의 운영 체계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진희종 생태법인 연구자는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은 상징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후견기구와 과학적 점검, 주민·어업인 참여, 투명한 재원 운용이 함께 설계돼야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파나마는 유엔으로, 멕시코는 법정으로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파나마 환경부 장관과 칼리 빌렌터프 For Nature 창립자 겸 The Leatherback Project 사무총장이 지난 4월 10일 ‘자연의 권리 보편선언’ 추진 협약에 서명하고 있다. 파나마와 For Nature의 협약은 자연권 논의가 국제 규범과 제도 영역으로 확장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Antonio Chen·AOP 제공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파나마 환경부 장관과 칼리 빌렌터프 For Nature 창립자 겸 The Leatherback Project 사무총장이 지난 4월 10일 ‘자연의 권리 보편선언’ 추진 협약에 서명하고 있다. 파나마와 For Nature의 협약은 자연권 논의가 국제 규범과 제도 영역으로 확장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Antonio Chen·AOP 제공


해외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법과 제도로 다루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파나마 정부와 국제단체 For Nature는 지난 4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자연의 권리 보편선언' 채택을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생태계와 종, 자연 시스템이 존재하고 지속되며 회복될 권리를 갖는다는 국제적 틀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파나마는 이미 자국 법에서 자연을 권리 주체로 인정한 나라다. 이번 협약은 국내 법제에 머물렀던 자연권 논의를 다자 외교 무대로 넓히는 의미가 있다. 생태법인이 환경운동의 구호가 아니라 국제 규범과 법적 절차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고래가 법적 다툼의 주체처럼 다뤄지는 사례가 나왔다. 멕시코의 뉴스데일리(Mexico News Daily)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액화천연가스 수출 사업과 관련해 캘리포니아만 고래를 대신한 소송이 제기됐다. 멕시코 소노라주 연방판사는 최종 판결 전까지 길이 300m가 넘는 초대형 선박 운항을 막는 정지 결정을 내렸다. 해당 소송은 고래에게 안전하고 살 수 있는 서식지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법리를 앞세웠다.

이 사례들을 제주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파나마는 국가 차원의 자연권 법제와 유엔 외교를 결합하고 있다. 멕시코 사례는 대형 선박 운항과 해양포유류 서식지 보호가 충돌한 사건이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연안 어업, 관광선박, 마을공동체, 특별자치 제도가 얽힌 지역형 의제다.

공통점은 뚜렷하다. 자연의 권리가 추상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외교 협약과 법정 판단, 개발사업 제동 장치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제주가 생태법인을 논의하려면 해외 사례의 법리를 참고하되 제주 바다의 생활경제와 관광 구조, 어업 현실에 맞는 운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 후견기구·주민 참여 없으면 작동 어렵다

지난해 2월 9일 제주지역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 보호활동을 전개할 '제주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가 발대식을 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2억원 규모의 모금을 추진하고 있다. 기부금은 돌고래 전망대와 생태관광 포토존 조성 등에 쓰일 예정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지난해 2월 9일 제주지역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 보호활동을 전개할 '제주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가 발대식을 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2억원 규모의 모금을 추진하고 있다. 기부금은 돌고래 전망대와 생태관광 포토존 조성 등에 쓰일 예정이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생태법인의 성패는 후견기구에 달려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직접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 누가 돌고래를 대신해 말하고 어떤 기준으로 권한을 행사할지가 핵심이다.

후견기구는 행정 중심으로만 꾸려지면 한계가 생긴다. 제주도와 중앙정부, 해양생태 전문가, 법률가, 수의·구조 전문가, 어업인, 지역주민,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행정은 집행력을 맡고 전문가는 과학적 판단을 보태야 한다. 주민과 어업인은 현장성을 제공하고 시민사회는 감시와 공론화를 맡을 수 있다.

권한도 분명해야 한다. 후견기구는 남방큰돌고래 서식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발사업이나 해상관광 사업에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선박 접근 기준 위반과 폐어구 피해가 반복될 때 조사와 개선을 요구할 권한도 필요하다. 필요한 경우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까지 검토해야 한다.

책임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회의록 공개, 연례보고서 발간, 기금 사용내역 공시, 외부 회계감사, 과학자료 공개가 제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자연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불투명하면 제도 신뢰가 떨어진다.

주민과 어업인을 배제한 생태법인은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어렵다. 남방큰돌고래 보호가 생업 제한으로만 받아들여지면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어업인은 돌고래 이동과 폐어구 피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현장 감시자가 될 수 있다. 마을어촌계와 해녀, 연안어업인이 참여하는 관찰·신고 체계를 만들면 행정의 점검 공백도 줄일 수 있다.

관광업계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선박 관광을 전면 금지하는 방식보다 육상 관찰 전환, 인증제, 제한적 운항 기준 준수, 해설사 교육, 위반 사업자 제재를 묶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규정을 지키는 업체에는 인증과 홍보 기회를 주고 반복 위반 업체에는 제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선박 관광을 육상 관찰형 생태관광으로 바꾸는 재원으로 활용된다. 전망대와 포토존 조성은 관광객이 돌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도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돌고래를 '쫓아가는 관광'에서 '기다리는 관찰'로 바꾸는 행동 기준을 세우는 의미도 있다.

다만 기부금만으로 생태법인을 운영할 수는 없다. 개체 조사, 폐어구 대응, 구조·치료, 관광선박 관리, 법률 자문, 주민 협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지속 재원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은 기본 조사와 제도 운영에 투입하고 제주도 예산은 현장 관리와 주민 협력사업에 배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생태관광 수익 일부를 보호기금으로 환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제주형 생태법인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제주특별법 개정안에 지정 대상과 권리 범위, 후견기구 권한, 재원 조성 방식이 담겨야 한다. 이후 조례와 시행규칙으로 관광선박 관리, 폐어구 대응, 구조·치료, 주민지원, 기금 운용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은 돌고래에게 이름표를 붙이는 제도가 아니다.
제주 바다를 관광 자원으로만 쓸지, 살아 있는 생태 주체와 함께 지킬지 정하는 기준이다. 제주 바다가 건강해야 돌고래도 살고 돌고래가 살아야 제주 바다의 생명력도 드러난다.


김종수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남방큰돌고래 보호와 지속 가능한 생태관광 모델 구축을 도민과 함께 추진하겠다"며 "제주 바다의 생태 가치를 지키는 기반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