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7편
그의 맞은편에는 사람 대신 거대한 검은색 캐비닛 모양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 연결된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당 2억 번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이 기계 앞에서 카스파로프의 얼굴은 게임 내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사실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1996년 첫 대결에서 카스파로프는 4대 2로 승리하며 인간의 자존심을 지켰다. 대국 후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컴퓨터는 여전히 창의성이 부족하군요." 하지만 1년 뒤 다시 나타난 딥블루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IBM의 엔지니어들은 전설적인 체스 기사들의 기보 수백만 개를 입력했고, 카스파로프의 고유한 습관과 약점을 파고들도록 알고리즘을 다듬었다. 딥블루는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 카스파로프라는 인류 대표 주자를 정밀하게 타격하기 위해 맞춤 설계된 저격수가 되어 있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2국에서 나왔다. 카스파로프는 기계의 약점을 노려 일부러 기물을 희생하며 유인책을 썼다. 그러나 딥블루는 무려 15분 동안 침묵을 지키다, 미끼를 무시한 채 장기적인 관점에서 숨통을 조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수를 두었다. 카스파로프는 경악했다. "이건 기계의 수가 아니야! 기계는 이렇게 뒤를 내다보는 인내를 가질 수 없어!" 그 15분은 인내의 시간이 아니었다. 미끼를 물었을 때 20수 뒤에 발생할 패배의 가능성을 연산하고 돌아오느라 걸린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스파로프의 평정심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딥블루 쇼크'라는 이름으로 타전되었다. 하지만 패배 이후 카스파로프의 행보는 놀라웠다. 그는 기계를 원망하는 대신, 인간과 기계가 한 팀이 되어 대결하는 '어드밴스드 체스'를 제안했다. "기계의 계산 능력과 인간의 직관이 합해졌을 때, 우리는 신의 영역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무료 체스 앱조차 1997년의 딥블루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제 아무도 컴퓨터와 체스를 두어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컴퓨터를 스승 삼아 수를 배운다. 카스파로프의 눈물은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동시에 인류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향해 처음 배를 띄운 출정식이기도 했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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