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경희대 의과대학 연동건 교수팀
임신 중 독감 감염 시 자녀 궤양성 대장염 위험 33% 증가
대규모 의료 빅데이터 256만명 추적 조사해 세계 최초 규명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연동건 교수와 김현지·박재유 연구원, 최유진 학생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수행했다.
■아이는 엄마 배 속 일을 기억한다
이번 연구는 임신부의 건강 관리 가이드라인을 바꾸는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산모 본인의 건강을 넘어, 태어날 아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독감 백신 접종과 감염 차단의 의미가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연동건 교수는 "임신 중 적극적인 독감 예방 접종과 감염 시 신속한 치료가 자녀의 염증성 장질환 예방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이 임신 중기 이후 산모를 진료할 때 자녀의 장 건강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 256만명의 기록을 뒤지다
연구팀은 건강보험공단의 대규모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2010년부터 2017년 사이에 태어난 아동 256만2302명을 대상으로 추적 관찰을 진행했다. 평균 추적 기간은 10.2년(최대 14년)으로,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장기간 따라가며 데이터를 쌓았다.
전체 조사 대상 중 산모가 임신 중 독감에 노출된 경우는 2만7061명으로 전체의 약 1.06%에 불과했다. 극히 일부임에도 통계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설득력을 높인다. 연구팀은 독감 감염 여부 뿐만아니라 아이의 연령, 임신 시기별 감염 차이, 계절적 요인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 유전적 배경이나 가정환경 같은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을 걷어내고도 '산모의 독감'과 '자녀의 궤양성 대장염'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확인했다.
■ 태반 넘어온 염증의 경고
분석 결과는 구체적이다. 독감에 노출된 산모의 자녀에서 궤양성 대장염 발생 건수는 1000명이 1년간 관찰됐을 때 0.37건으로, 비노출 그룹의 0.26건보다 높았다. 33% 높은 위험이 수치로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 위험 증가는 아이가 7세가 될 때까지 지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감염 시기와 계절도 중요한 변수였다. 임신 후기(3분기) 감염 시 위험도는 독감에 걸리지 않은 산모의 자녀에 비해 약 2배까지 치솟았고,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봄철에 감염된 경우 자녀의 궤양성 대장염 위험은 약 58%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은 독감 감염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박재유 연구원은 "임신 중 독감 감염이 장에 생기는 만성 염증 질환 가운데서도 특히 궤양성 대장염 위험과 뚜렷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독감 바이러스 자체가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감염으로 인해 산모 몸에서 만들어진 '염증을 일으키는 신호 물질'이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장 면역 체계를 교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 결과는 소화기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지인 'GUT'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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