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등 중심에서 탈피… 벤처투자 등 '생산적 분야' 물길 발행어음 규모 54.4조 돌파… IMA '투자 의무' 마중물로 작용 7대 종투사 1분기 공급액 25%↑…중개 플랫폼 등 인프라 확충 증권사 리스크 관리는 숙제…"기업가치 평가 등 핵심역량 될 것"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비생산적 분야에 과도하게 고여있던 대한민국 금융의 자금줄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등 '생산적 분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유망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모험자본 허브'로 변모하면서, 국가 경제의 실물 지원 능력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본시장 내 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은 수치로 증명된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발행어음 조달 규모는 지난 3월 말 기준 5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0년 말(15조6000억원)과 비교해 불과 5년여 만에 3.5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조달한 거대 자본은 벤처업계의 자금원이 되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7개 대형 종투사의 올해 1분기 모험자본 공급액은 9조9000억원에 달한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 대비 25.7%나 급증한 수치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정부의 밸류업 기조가 맞물리며 증권사들이 투자 방향을 부동산에서 기업금융(IB) 본연의 역할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본의 이동 뒤에는 정부의 제도적 유인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조달 금액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 제도가 핵심 동력으로 여겨진다. 이 비율은 올해 10%에서 내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MA 의무 투자 규정은 증권사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망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 키워내야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이러한 강력한 유인책이 벤처 투자 시장의 '메기' 역할을 하며 전체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프라 구축도 가속화되고 있다. 오는 7월 출시 예정인 '모험자본 중개 플랫폼'은 자금 수요자인 기업과 증권사·벤처캐피털(VC) 등 자금 공급자의 정보를 집적해 검색·추천·매칭 기능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모험자본 중개 플랫폼은 그간 벤처 투자의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일반 투자자들까지 혁신 기업 투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전망이다.
플랫폼을 통해 민간 자본 유입이 원활해지면, 기업은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하고 증권사는 투자 자산을 회수해 다시 새로운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것으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험자본의 경우 증권사들에게 신규 수익 창출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적에 대한 손익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령 증권사들이 조달한 자금의 만기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모험자본 등에 투입되는 자금 회수는 수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성격을 띤다.
아울러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 금융과 달리, 기술력과 성장성에 의존하는 모험자본 투자는 부실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워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증권사들이 벤처 투자 자산에 대한 리스크 관리 역량을 더욱 정교하게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증권사가 진정한 모험자본의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업 가치 평가 능력과 함께 예기치 못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고도의 리스크 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향후 증권업계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핵심은 신용 위험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에 있다"며 "결국 발전 가능성이 높은 유망 기업을 정교하게 골라내는 능력이 증권사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며, 여기서 강점을 보이는 곳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성장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 역시 모험자본 공급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당국은 종투사가 투자 초기 단계부터 사전 심사를 강화하고, 자산 전반의 관리 역량을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발행어음과 IMA에 대해 100% 이상의 유동성 비율 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위기 상황 분석 및 비상자금 조달 계획 수립을 지도하고 있다"며 "증권사가 안정적으로 실물 경제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유동성 규제 체계 전반의 개편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간 부동산에 편중됐던 자금을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본 규제를 개선하고 있다"며 "건전한 리스크 관리 체계 하에서 양질의 모험자본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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