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제주 가족의 표준이 사라진다… 저출생·고령화·이주가 바꾼 생활공동체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18 14:23

수정 2026.05.18 14:23

전통적 친족·마을 네트워크 약화
청년 유출 속 고령 단독가구 증가
외국인 주민·다문화가정 생활권 확대
돌봄·교육·일자리 정책 재설계 과제
제5차 기본계획, 변화 대응 시험대

제주 가족 형태 변화는 다문화가족 증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출생, 고령화, 청년 유출, 이주민 증가가 겹치며 생활공동체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주 가족 형태 변화는 다문화가족 증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출생, 고령화, 청년 유출, 이주민 증가가 겹치며 생활공동체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가족의 표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결혼과 출산, 혈연과 친족,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생활 구조가 저출생과 고령화, 청년 유출, 이주민 증가가 겹치며 다층적 가족사회로 바뀌고 있다.

18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는 '제5차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및 지원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연구용역은 지방행정발전연구원이 맡아 오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6개월간 진행한다.

이번 계획은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을 손보는 행정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제주 사회의 가족 형태가 어느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지 살피고, 가족정책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가깝다.

제주도는 이번 실태조사에서 도내 다문화가족 850가구를 비롯해 내국인 주민과 서비스 제공자 등을 함께 조사한다. 대면 조사와 온라인 조사, 집단심층면접(FGI)을 병행한다. 다양한 국적의 다문화가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문은 7개 언어로 번역해 진행한다.

조사 항목은 가족 기본생활 실태, 사회·경제 활동, 교육·돌봄 환경, 정책 수요를 중심으로 짜였다. 지역산업과 연계한 경제활동, 교육·돌봄 접근성 등 제주 특성을 반영한 내용도 포함된다. 관광, 농어업, 돌봄 서비스 등 제주 주요 현장의 인력 구조가 이주민 생활권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제주 가족 변화는 다문화가족 증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저출생과 고령화, 청년층 유출, 외국인 주민 증가가 한꺼번에 진행되며 전통적 가족·마을 공동체의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 가족 안에서 해결하던 돌봄과 생활 지원은 학교, 행정, 복지기관, 고용 현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숫자도 변화를 보여준다. 제주도 인구빅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제주 총인구 69만8358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2만7582명으로 고령인구 비율은 18.3%를 기록했다. 2010년 12.1%였던 비율은 2020년 15.3%, 2023년 17.4%에 이어 계속 높아졌다.

출산 기반도 약해졌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통계시스템은 2024년 제주 합계출산율을 0.83명으로 제시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출산율 하락은 가족 규모를 줄이고 가족 내부 돌봄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인가구 증가는 가족 형태 변화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호남지방통계청의 '호남·제주지역 1인가구 변화상'에 따르면 2023년 제주 1인가구는 9만3739가구로 전체 가구의 33.7%를 차지했다. 2015년 26.5%였던 비중이 8년 만에 7.2%포인트 높아졌다. 2052년에는 제주 1인가구가 12만3293가구로 늘고 전체 가구의 39.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청년 유출도 가족 구조 변화와 맞물린다. 제주연구원은 제주지역 순이동인구가 2016년 1만4632명 순유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증가세가 둔화됐고 2023년에는 1687명 순유출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2024년 국내인구이동통계에서도 제주는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은 순유출 지역으로 분류됐다.

외국인 주민과 이주배경 인구는 제주 생활권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제주 통계에서는 총인구 67만6767명 가운데 외국인 주민이 3만6830명으로 5.4%를 차지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변화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2024년 4월 1일 기준 도내 이주배경학생은 3332명으로 2023년보다 6.5% 늘었다. 앞서 2024년 초 제주도내 초·중·고 다문화학생은 3128명으로 전체 학생의 4% 수준으로 집계됐다. 부모 국적은 베트남이 가장 많았고 중국과 필리핀이 뒤를 이었다.

제주도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제5차 기본계획의 정책 대상을 기존 결혼이민자 중심에서 중도입국 자녀, 외국인 주민, 이주배경 청소년 등으로 넓힐 방침이다. 초기 정착 지원 중심이던 기존 틀도 주거, 일자리, 교육, 돌봄, 사회참여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지원체계로 바꾼다.

정책 방향이 바뀌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령 부모와 떨어져 사는 청년, 혼자 사는 중장년,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고령 단독가구,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 이주배경 학생이 한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조가 제주에 자리 잡고 있다. 가족정책이 특정 계층 지원에 머물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선 셈이다.

차별과 갈등 요인에 대한 실태 분석도 과제로 떠올랐다. 제주도는 지역사회 내 차별과 갈등 요인을 살피고 전담팀(TF)을 구성해 정책의 현장 적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다문화가족 정책이 복지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 통합 정책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이혜란 제주도 복지가족국장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제주지역 다문화가족의 생활 여건과 정책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겠다"며 "교육, 돌봄, 사회참여 등 분야별 지원체계를 다져 다문화가족이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관계기관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까지 제5차 다문화가족 지원 기본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번 계획의 성패는 사업 몇 개를 추가하는 데 있지 않다.
제주 가족의 표준이 사라진 자리에 어떤 생활 안전망과 사회 통합 체계를 세울 것인지가 핵심이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