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깊어지는 제주 농촌 현장
소규모 농가·부채 부담 이중 압박
온라인 판매·고객관리도 농사 경쟁력
스마트경영 사례로 본 판로 변화
기술 보급보다 경영 전환 지원 과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농업이 생산 중심에서 경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농가 인구는 줄고 고령화는 깊어지는 가운데 경영비와 부채 부담이 농가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능력만으로는 농가 경영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다.
제주 농업 현장에 온라인 마케팅, 브랜드 전략, 라이브커머스, 숏폼 콘텐츠가 들어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스마트경영은 장비를 새로 들이는 문제가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이 최근 미래농업육성관에서 연 '2026년 농업인 스마트경영 혁신대회'는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농업기술원과 한국정보화농업인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가 공동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농업인 100여명이 참석했다. 대회는 '달라진 농업 N.E.X.T. 단계로 나아가다'를 주제로 스마트경영 혁신사례, 스마트콘텐츠, 라이브커머스 등 3개 부문에서 진행됐다.
행사 자체보다 주목할 대목은 경진 부문이다. 스마트경영 혁신사례는 농가의 경영 방식 변화를 다뤘다. 스마트콘텐츠는 농업인이 직접 농산물과 품종, 농장 이야기를 알리는 미디어 역량을 평가했다. 라이브커머스는 농업인이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농산물을 판매하는 능력을 겨뤘다. 농사가 생산 현장에 머물지 않고 유통과 홍보, 고객관리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고령화는 농가인구보다 경영주 연령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12월 1일 기준 제주 농가 인구 8만9050명 가운데 65세 이상은 3만1132명으로 35.0%를 차지했다. 2020년 28.8%보다 6.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농가를 실제로 책임지는 경영주 고령화는 더 가파르다. 제주 농가 경영주 3만8165명 가운데 65세 이상은 1만8148명으로 47.6%였다. 70세 이상 경영주가 1만2154명으로 31.8%를 차지했고 40세 미만 경영주는 798명으로 2.1%에 그쳤다. 농가 경영의 중심축이 고령층에 놓여 있고 젊은 경영주 유입은 제한적인 구조다.
인구 감소 흐름도 별도로 짚어야 한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제주 농가인구는 6만8696명이다. 2020년과 비교하면 남성 농가인구는 13.8%, 여성 농가인구는 14.0% 줄었다. 제주 농촌은 인구 기반이 줄어드는 가운데 경영 책임자의 고령화까지 겹치는 구조다.
농가 규모도 경영 부담을 키우고 있다. 경지가 없거나 1㏊ 미만인 제주 농가는 전체의 71.8%로 집계됐다.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3000만원 미만인 농가 비중도 70.4%에 달했다. 소규모 농가가 많은 구조에서는 생산비 상승과 판로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소득이 높다고 경영 여건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통계청의 2024년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 농가 평균 부채는 8367만원으로 전국 평균 4502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제주 농가부채는 11년 연속 전국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제주 농가 평균 소득은 6024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았지만 전년보다 0.5% 줄었다.
경영비 부담도 크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주지역 농업경영비는 5224만5000원으로 전국 평균 2727만3000원의 두 배에 가까웠다. 2020년과 비교한 경영비 상승률도 제주는 27.9%로 전국 12.6%보다 높았다.
제주 농업이 스마트경영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으로만 재배하고 기존 유통망에만 기대는 방식으로는 비용과 판로를 동시에 관리하기 어렵다. 생산량, 노동 투입, 판매단가, 고객 반응, 온라인 주문 흐름을 함께 살펴야 농가 수익 구조를 조정할 수 있다.
이번 대회 수상 사례는 제주 농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마트경영 혁신사례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최은진씨는 감귤 농장 운영에 온라인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을 접목했다. 농업기술원은 최씨가 '농부 마케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감귤을 생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농장과 상품, 소비자 경험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은 사례다.
라이브커머스 부문 최우수상 김향수씨는 '향토유황마늘'을 소개하며 상품 설명부터 구매 유도까지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라이브커머스는 농산물 판매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중간 유통망에만 기대던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농업인이 직접 소비자에게 품질과 산지 이야기를 설명하고 주문까지 연결하는 방식이다.
스마트콘텐츠 부문 최우수상 양정주씨는 '제주감귤의 미래는'을 주제로 국내 육성 신품종 감귤의 우수성과 제주감귤 산업의 가능성을 영상으로 풀어냈다. 신품종 보급도 재배기술만으로 확산되기 어렵다. 소비자가 품종의 맛과 차이, 생산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로 설명하는 능력이 함께 필요해졌다.
수상자들은 오는 6월 19일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 '2026년 농업인 스마트경영 혁신대회'에 제주 대표로 참가할 예정이다. 제주 농가의 스마트경영 사례가 전국 단위 경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제주 농업정책에도 과제가 남는다. 스마트농업을 장비 보급이나 기술 교육으로만 다루면 현장 체감도가 낮아질 수 있다. 고령 농가가 실제로 쓸 수 있는 경영 도구, 온라인 판매를 이어갈 수 있는 교육, 고객 데이터를 관리하는 체계, 브랜드를 키우는 컨설팅이 함께 가야 한다.
송효선 제주도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장은 "디지털 기술 발전과 새로운 경영혁신 속에서 제주 농업인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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