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 헌법 조국통일 문구 삭제
'적대적 두 국가론'도 공식화해
南과 교류하다 체제 와해 우려
통일백서, '사실상 두 국가' 명시
'평화적' 수식어에도 위헌 논란
평화 위해 통일 않겠다는 궤변
북한은 그렇다 치자. 우리 내부에서도 통일을 백안시하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으니 문제다. 얼마 전 통일이 주 업무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입에서 "통일이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18일 공개된 이재명 정부의 첫 '통일백서'는 남북한을 '사실상의 두 국가'로 명시했다. '적대적' 대신 '평화적'으로 수식어만 바꾼 채 김정은의 두 국가론에 맞장구친 격이다.
북한은 기존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규정했다. 이번 개헌에서 이 '통일 3원칙'을 들어냈다. 북한 정권 수립 이래 조국통일 노선을 갈아엎고,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전제했던 1민족·1국가 패러다임도 일방 폐기한 셈이다. '적국'인 대한민국과 "따로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김일성 정권 이래 북한이 통일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궁극적 목표는 적화통일이었다. 6·25 때처럼 군사력이 우세하고, 대외 여건이 유리할 때는 무력 통일을 시도했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로 남한 사회의 분열을 노리는 통일전선전술식 평화통일 공세를 폈다. 고려연방제는 후자용 '미끼'였다.
김정은식 남북 단절 노선은 '남조선 혁명' 운운하던 김일성·김정일 때보다 외견상 수세적이다. 세습체제의 3대 상속자인 그가 선대의 유지를 저버리면서 남쪽과 담쌓고 살려는 까닭은 뻔하다.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북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어서다. 남북 간 경제력 등 총체적 국력 격차는 천양지차다. 남북 교류 때마다 그간 강성대국이라고 주민들을 세뇌해 온 '김씨 조선'의 남루한 실상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북한 수뇌부가 현 단계에선 남한 내 친북 세력과 연계한 통일전선전술의 실효성이 적다고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뇌리 속에서 교류·협력 및 통일의 대상으로서 남한을 아예 지우겠다는 얘기다. 김정은 정권이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 등으로 K팝 등 한류 유입을 극력 차단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런데도 정부 일각에서 북의 두 국가론에 힘을 실어주는 기류와 함께 위헌 시비를 자초하고 있는 듯해 걱정스럽다. 특히 통일 주무 장관이 '통일'이란 말을 기피하고 있으니 그렇다. 정 장관은 과거 노무현 정부 통일부 장관 때 통일과 민족공동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터라 더 황당하다. 이제 와서 김정은이 적국으로 '한국'을 호명하자 평화가 우선이란 명분으로 포장해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자니 말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변주한다고 남북 간 불협화음이 해소되겠나. 북한은 김정은에게 핵무기 사용 권한을 공식 부여하는 조항까지 새 헌법에 넣었다. 우리가 그저 일편단심 비위를 맞춘다고 북한이 평화 파괴 수단인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남북 교류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짝사랑은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십중팔구 실패로 끝난다.
그런 맥락에서 서독이 동서독 분단을 끝내고 독일 통일을 일군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1973년 유엔 동시 가입을 기화로 동독은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그 무렵 체제 경쟁에서 서독에 크게 밀린 동독 사회주의 정권이 '2국가 2민족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작금의 김정은 정권과 판박이 행보였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기민당과 사민당 등 어느 당이 집권하든, 동독 정권의 분단 고착화 기도에 철저히 선을 그었다. 다양한 교류 이벤트로 동독 주민에게 다가가되 경제 지원 때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 동독 정권의 반인권·반통일 노선을 견제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 국가론'에 장단 맞춰선 곤란하다. 더욱이 북한은 동독과 같은 수준의 사회주의 정권조차 못 된다. 퇴행적이기 짝이 없는 '주체교'로 무장한, 이란이 울고 갈 만한 신정체제란 얘기다. 어린 김주애가 북의 4대 '아야톨라'로 등극한 이후까지 분단이 이어진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는 노력과 별개로 통일이 헌법상 최상위 국정 목표임을 잊어선 안 된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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