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피플일반

[fn이사람] "아버지 전파사엔 늘 팍팍한 삶 모여… 법조인 된 이유죠"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0 18:20

수정 2026.05.20 18:19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변호사
사연 품고 오는 손님들 보며 자라
친구 떠나보내고 印 봉사단체 가입
"가장 가까운 북한인에 관심없냐"
지적 듣고 탈북민 인권 활동 투신
성폭행·간첩사건 등 승소 이끌어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변호사.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제공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변호사.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제공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북카페. 5m가 넘는 책장에는 문학부터 경제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오와 열을 맞춰 꽂혀 있었고, 한쪽에 난 넓은 통창으로는 햇빛이 들고 있었다.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변호사(사진)는 이곳을 자신의 '최애 장소'라고 소개하며 '생각의 근육'을 언급했다. 그는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40이 넘은 이 나이가 돼서도 생각의 근육을 늘리는 것을 게을리할 수 없다"며 "사무실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이곳에 와 눈에 보이는 책을 집어 읽곤 한다"고 밝혔다.

전북 군산 출신의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전파사는 마치 고단한 소시민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찾아오는 '심야식당' 같았다"고 회고했다. 충남 논산에서 참외 농사를 짓다 군산으로 넘어와 오랫동안 남의 가게에서 궂은일을 하고도 빈손으로 쫓겨나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이후 자신의 전파사를 열고 사람들의 고장 난 라디오와 물건들을 단돈 1000원, 2000원에 고쳐줬다.



전 변호사는 "고장 난 물건과 함께 버무려진 사람들의 팍팍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외된 것들의 소중함을 배웠고, 동시에 돈과 힘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이웃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의 민낯도 일찍부터 목도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진 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을 곁에서 지켜보며,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 훗날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든든한 정서적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년기의 경험은 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낮고 그늘진 곳으로 이끌었다. 대학 재학 중 프랑스 문화에 매료됐던 그는 외교관을 지망했었다. 그러나 당시 불의의 성범죄 피해를 입은 각별했던 친구를 황망하게 떠나보내며 삶의 궤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험 기간이라는 이유로 친구의 마지막 만남 요청을 미뤘다는 뼈저린 죄책감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방황 끝에 무작정 인도로 떠나 마더 테레사 수녀의 봉사단체에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 외국인 활동가로부터 "너희는 왜 가장 가까이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느냐"는 지적을 듣게 된다. 이 한마디는 외교관을 꿈꾸던 '전파상 맏딸'을 생사를 넘나들며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민들의 인권활동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가게 했다. 그 결과 △2020년 탈북여성 성폭력 피해자 사건 △2022년 탈북청년 국가보안법 간첩죄 사건 △2026년 영화 복지식당 정재익 감독 장애정도결정취소처분 행정소송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변해 승소로 이끌었다.


전 변호사의 시선은 좁은 법정을 넘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라는 더 넓은 무대로 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사후적인 법률 구제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들은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개별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만으로는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데 한계를 느껴 정치의 영역에 뛰어들게 됐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