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삼성전자발(發) 성과급 갈등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반도체·조선·항공·철강 업종 곳곳에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가 잇따르는 가운데, 원·하청 노조까지 가세하며 파업 전선이 확대하는 양상이다.
특히 노동쟁의 범위를 넓힌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경영상 판단 영역까지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면서, 산업계에서는 '성과급 분쟁'이 기업 경영과 공급망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업이익 나눠달라"…산업계 전반 번지는 성과급 갈등
2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계 전반에서 이른바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갈등의 출발점은 삼성전자였다.
전날 중앙노동위원회 2차 사후조정마저 결렬되면서 총파업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노조는 성과급 재원의 70%를 반도체(DS) 부문 전체에 균등 배분하고, 나머지 30%를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사측은 이 같은 방식이 성과주의 인사 원칙을 훼손하고 적자 사업부에도 과도한 성과급 지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맞섰다.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 김 장관은 전날 오후 경기도 수원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서 노사 자율교섭을 주재하며 막판 설득에 나섰고, 결국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을 한 시간 앞둔 20일 밤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합의의 핵심은 기존 성과인센티브(OPI)와 별도로 반도체(DS) 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한 것이다. 특별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로 정했으며 지급률 상한은 두지 않기로 했다.
합의 직후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조합원 대상 지침을 통해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예정됐던 총파업을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유보한다고 공지했다. 다만 이번 합의는 잠정안으로, 오는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해야 최종 효력을 갖는다. 투표가 가결되면 5개월 넘게 이어진 삼성전자 노사 갈등도 일단락될 전망이다.
총파업은 일단 유보됐지만, 문제는 갈등이 삼성전자 내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 협력업체로의 확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협력사는 1·2차를 합쳐 2만여곳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원청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간 성과급 격차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경우 반도체 생태계 전반이 상시 교섭과 파업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는 사내 물류 협력업체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성과급 차별 중단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조선업에서도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처음으로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안에 담았고, 사내하청 노조 역시 원청과 동일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 갈등은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 이슈로도 번지고 있다. 현대모비스 노조는 램프사업부 매각 계획에 반발하며 총력 투쟁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일부 계열사 노조는 이미 파업에 돌입했고 생산 차질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 역시 통합 이후 적용될 연공서열 체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포스코 노조도 협력사 직원 직고용 문제와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싸고 중노위 조정을 신청하면서 창사 이후 첫 파업 가능성이 거론된다.
경영 판단까지 쟁의 대상…노란봉투법 후폭풍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갈등 확산의 배경에 노란봉투법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법 취지는 하청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자는 데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되면서 경영 판단 영역까지 파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성과급은 임금·근로조건인지, 경영상 판단인지에 따라 법적 성격이 엇갈렸다. 그러나 노동쟁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영업이익 배분 요구나 사업 재편, AI 도입 문제까지 노조 요구안에 포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신기술 도입과 공정 개선을 노사 공동협의회 의결 사항으로 두는 단협안을 제시했고, 현대차와 HD현대중공업 노조도 AI 도입에 따른 고용 보장 문제를 요구안에 포함했다.
불법파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점도 강경 투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란봉투법은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설령 쟁의행위가 위법 판단을 받더라도 노조가 감수해야 할 경제적 리스크는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평가다.
정부도 성과급 갈등 확산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사태를 겨냥한 듯 "세금 떼기 전 영업이익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못 하는 일"이라며 "일부 노조가 적정한 선을 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 3권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일부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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