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모두 제탓" 이재용 회장의 주말 '90도 사과'…스타벅스는 어떤 과정을 걷고 있나 [쓸만한 이슈]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2 07:50

수정 2026.05.22 10:37

기업들이 보여준 사과의 법칙…빨리·책임자가 직접·변명은 빼고
2009년 도미노피자, 대표 영상으로 사과하고 '셀프 디스' 캠페인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고객과 국민에 허리 숙여 사과
남양유업 갑질·대한항공 땅콩회항, 법칙 지키지 않아 사태 키워

사과문 붙은 광주 스타벅스 매장. /사진=연합뉴스
사과문 붙은 광주 스타벅스 매장.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진정한 사과는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사과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 아론 라자르 박사는 저서 '사과에 대하여(On Apology)'에서 사과를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닌 '신뢰 회복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책임을 피하려는 사과는 오히려 대중의 분노만 증폭시킨다는 분석도 함께였다.

이는 시장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기업들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미 '사과'의 방법 때문에 회사의 명운이 갈린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

라자르 박사의 말처럼 사과를 통해 회복의 과정을 거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추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도 있었다.

2026년 5월 현재 '탱크데이'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는 지금 어떤 '사과의 과정'을 지나고 있을까.

'사과' 추락을 회복시키는 힘

지난 2009년 당시 도미노피자 북미 총괄 사장이던 패트릭 도일 CEO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직원들의 부적절한 태도에 사과하고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지난 2009년 당시 도미노피자 북미 총괄 사장이던 패트릭 도일 CEO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직원들의 부적절한 태도에 사과하고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2009년 미국 유명 피자 체인인 도미노피자는 한편의 영상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한 매장 조리실에서 직원 두 명이 피자 재료를 던지고 발로 밟는 등 장난을 친 뒤, 해당 재료로 피자를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담겼다.

유튜브에 공개되고 이틀 만에 10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미국 소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매출은 급락했고 불매 움직임까지 번졌다.

본사는 그해 4월 12일 오후 4시 30분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오고 15분 만에 상황을 인지하면서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문제 직원들을 특정해 경찰과 보건당국에 신고했고, 유튜브에는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 음식은 실제 고객에게 배달되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 설명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반전은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당시 북미 총괄 사장이던 패트릭 도일 CEO가 직접 사과 영상에 등장했다.

문제의 영상이 올라온 그 플랫폼, 유튜브에서 문제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의 허점을 인정하면서 "윤리 교육 강화와 관리 시스템 개선에 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영상은 65만명 이상이 시청했다. 17년 전 SNS 환경을 감안하면 빠른 대처였다.

도일 CEO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자 턴어라운드'라는 캠페인 영상에도 등판했다. 영상은 소비자들이 "최악의 피자", "도우가 종이 같다"며 도미노피자에 불만을 제기한 뒤 도일 CEO가 나와 "우리는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일종의 '셀프 디스 캠페인'은 뜻밖의 효과를 냈다. 급전직하였던 매출은 회복세로 돌아섰고 소비자 신뢰도 되살아났다.

사과의 모범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 국면에서 이재용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인 장면이었다.

이 회장은 지난 16일 해외 출장에서 귀국하며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전 세계 고객과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

총파업을 닷새 앞둔 시점에 총수가 직접 책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사과의 타이밍과 주체가 분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사과에도 법칙과 원칙이 있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급거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머리 숙여 사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외 출장을 마치고 급거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6일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머리 숙여 사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미노피자나 삼성전자의 대응은 기업이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적 사례다. 기업의 사과에 대해 연구한 학술기관이나 연구자들도 비슷한 방식의 '사과'를 얘기했다.

먼저 기업이 지켜야 할 사과의 법칙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SNS 시대에 기업이 침묵하는 동안 소비자들은 스스로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고, 분노는 곧 불신으로 굳어질 수 있는 만큼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2026년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지에 실린 연구 역시 사과 시점이 대중 반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특히 부정적 정보가 공개되기 전이나 초기 단계의 사과가 훨씬 더 높은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인공지능발전협회(AAAI) 웹로그 및 소셜미디어 국제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소셜 미디어에서의 악평 관리: 도미노 피자 위기 사례 연구'에서도 온라인 환경에서 기업들이 실수를 사과하는 데 달라진 '시간'을 언급했다. 이 논문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박자람, 차미영, 김호, 정재승이 공동 작성했다.

논문에선 "과거 기업들은 실수를 사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오늘날에는 반응이 훨씬 빨라졌다"며 "소셜 미디어가 악재 확산과 위기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기업 CEO들은 유튜브를 통해 사과하는 등 기업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례로 든 것 중 하나가 도미노피자 도일 CEO의 사과 영상이었다. 덕분에 매출이 회복된 상황도 제시했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악평 관리: 도미노 피자 위기 사례 연구'가 도미노피자의 한 매장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직원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뒤 SNS에서 브랜드 신뢰 추이를 보여주는 모습. 영상이 공개된 4월 12일 이후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가 CEO 사과 영상이 공개된 뒤 반전을 보였다. /출처=AAAI Conference on Weblogs and Social Media(2012년)
'소셜 미디어에서의 악평 관리: 도미노 피자 위기 사례 연구'가 도미노피자의 한 매장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직원들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뒤 SNS에서 브랜드 신뢰 추이를 보여주는 모습. 영상이 공개된 4월 12일 이후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가 CEO 사과 영상이 공개된 뒤 반전을 보였다. /출처=AAAI Conference on Weblogs and Social Media(2012년)

두 번째 법칙은 '책임질 사람이 직접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아 문제를 키운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3년 남양유업 사태다. 당시 남양유업은 영업사원 폭언과 밀어내기 논란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언론은 "사주가 불참한 데다 경영진이 '본사는 몰랐다'고 주장해 대리점주와 소비자를 더욱 자극했다", "진짜 책임자는 뒤에 숨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남양유업 사태는 단순 갑질 논란을 넘어 장기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마지막 법칙은 '사과문에 변명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듣고 싶은 사과는 "왜 어쩔 수 없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고칠 것인가"다. 해명은 필요하지만, 그 해명이 사과보다 앞설 경우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14년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태가 바로 사과를 분노로 키운 경우였다.

당시 대한항공은 사과문에서 "비상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항공기가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다"고 했다. 문제가 된 건 사과에 덧붙인 해명이다. 사과문에는 "항공기는 탑승교에서 10m도 이동하지 않아 안전 문제는 없었다"는 해명과 함께 조현아 당시 부사장의 지적이 "당연한 일"이었다는 취지의 설명까지 넣어 논란을 키웠다.

빠르기만 했던 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폄훼 이벤트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김수완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19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를 찾아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폄훼 이벤트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김수완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19일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를 찾아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 역시 사과의 방식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치부터 사과까지 모든 게 빨랐지만, '누가'와 '어떻게'가 부족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스타벅스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곧바로 문구를 수정·삭제했지만, 초기 사과는 경위 설명 없이 부적절성을 인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5·18을 모르는 젊은 직원들이 기획하다 보니 불거진 일이라는 해명도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그제서야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과 임직원 교육 등 재발 방지책이 나왔지만, 대중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쪽짜리 사과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스타벅스 이벤트를 비판하며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뒤 "5.18 유가족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5·18재단도 "역사 왜곡과 희화화 표현"이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촉구했다.

스타벅스 매장에 부착된 5·18 '탱크데이' 관련 사과문. 초기 게시판엔 가장자리 홍보 배너와 함께 사과문(왼쪽)이 붙여졌다가 현재는 사과문만 게재돼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스타벅스 매장에 부착된 5·18 '탱크데이' 관련 사과문. 초기 게시판엔 가장자리 홍보 배너와 함께 사과문(왼쪽)이 붙여졌다가 현재는 사과문만 게재돼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결국 정용진 회장은 사과문과 함께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해임했다.

후속 조치에도 나섰다.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직접 광주를 찾고 매장에 게시된 사과문의 위치도 달라졌다. 처음엔 홍보 배너들과 함께 붙어있던 사과문은 현재 게시판 중앙에 걸려있다.

그런데도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과의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빨리 인정하고, 책임자가 직접 나오고, 피해자가 납득할 조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인정은 비교적 빨리 했지만, 책임자인 정 회장은 사과문만 냈을 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사과는 늦을수록 비용이 커진다. 그리고 진정성 없는 사과는 사과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분노를 부른다.


앞선 기업들이 이미 그 답을 보여줬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