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길찾는 데 나침반은 필수
속도 늦춰도 되지만 방향 잃으면 끝
대학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하지만
국민의 신뢰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
대학 자율적 권리·책임확보가 중요
국민의 신뢰 회복하기 위한 밑거름
예일 보고서는 지난 2014년 국민 57%의 신뢰를 받았던 미국 대학이 2024년 현재 36%의 신뢰만을 받고 있으며, 국민 3명 중 2명은 대학 고등교육을 신뢰하지 않아 본인 혹은 자녀의 대학 진학을 주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했다. 대학 등록금의 과도한 상승, 입학 제도의 불투명성, 학문과 표현 자유에 대한 제약, 시대에 뒤떨어진 강의, 낡고 경직된 학사와 행정 시스템 등이 그 이유였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대학도 예외 없이 존립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일대학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담대한 도전 의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경의를 보낸다.
지난 10년의 대학을 돌아본다. 모든 학부생을 대상으로 코딩 교육에 집중하다가 의과대학 정원 대폭 증원의 길을 갔고,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계약학과 개설에 집중한 것은 테크놀로지 발전과 산업 환경, 국가 정책의 변화에 따른 대학의 적극적인 적응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대학에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이 미래산업의 추진체라면 미래 인재들이 단순한 기능인이 아닌 주체적 지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철학적, 역사적 사고의 훈련 과정을 같이 제공해야 한다. 더욱 폭넓고 균형적인 의료 서비스를 위해 의료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면 의료교육 시스템의 확충과 의료윤리 교육을 미리, 혹은 함께 준비해야 한다. 반도체 분야가 미래 첨단산업의 핵심이라면 미래 인재들이 공장의 단순 기능인이 아닌 내공을 갖춘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기초과학인 물리와 수학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대학이 가시적 트렌드에 근시안적으로 대응해 우왕좌왕하는 동안 대학에 대한 학생, 학부모, 국민의 신뢰는 한없이 추락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고등교육이 과연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국도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대학에 대한 신뢰의 문제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의 나침반과 조타수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같다. 고요한 바다를 항해할 때나 엄청난 파고를 넘어갈 때나 다도해의 험난한 항로를 지나갈 때나 우리에게는 신뢰할 만하고 일관성 있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항로 여건에 따라 종착지 항구로 향하는 속도는 조절될 수 있으나, 나침반이 제시하는 방향은 포기할 수 없다. 대학은 예측 불가능한 것만이 예측 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나침반과 조타수의 역할을 매우 진중하게 수행해야 한다.
정부 정책과 산업 전략이 눈앞의 성과를 위해 나침반을 조작하거나 조타수의 판단에 영향을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 대학이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대학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나침반, 조타수, 그리고 방향성의 가치다. 그것들이 바로 대학에 대한 국민 신뢰의 근거이며 한편 필수적 존립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일 보고서가 대학에서의 사유와 표현의 자유의 제약을 대학의 신뢰 추락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한 점은 매우 타당하다.
우리 대학들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율적 권리와 책임 영역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법률이 적극적으로 금지한 것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대학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의 항해 방향을 숙고하고 결정하게 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가 요구된다. 등록금제도, 입학제도, 학사제도, 다양한 교육사업의 유연성 보장이 네거티브 규제의 핵심이어야 한다. 개별 대학이 확보된 자율적 권한으로 스스로의 항로를 결정하고 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대학 경영문화가 정착되어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대학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대로 질문할 수 있다.
대학에 대한 신뢰는 국가와 국민에게 매우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그 신뢰의 제고를 위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예일 보고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한다. 테크놀로지 발전과 산업의 재편성, 글로벌 국가와 대학의 경쟁이 항해의 속도전을 과도하게 강요하는 이 시점에 대학의 나침반과 조타수의 역할을 다시 한번 숙고했으면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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