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AI도 모르는 노동시장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1 18:23

수정 2026.05.21 18:23

조윤주 정보미디어부 부장
조윤주 정보미디어부 부장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 이후 노동시장 담론을 지배한 프레임은 단연 '직업 소멸론'이었다. 'AI 때문에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는 가장 흔한 질문이 됐다. 변호사·회계사·개발자·디자이너까지, AI가 화이트칼라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일반화된 명제다. 생성형 AI가 보고서를 쓰고 코드를 생성하며 계약서를 요약하는 장면은 분명 충격적이었고,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라는 공포가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내놓은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 보고서'는 매우 흥미롭다.

기존의 '직업 소멸론'과는 결이 다른 전망이어서다.

분석 대상 182개 직업 가운데 완전 소멸이 예상되는 직업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감소 가능성이 언급된 직무조차 출납 창구 사무원, 디자인·편집 보조처럼 반복성과 정형성이 높은 영역에 집중됐다. 오히려 의료·돌봄·문화콘텐츠 분야는 인력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이 보고서의 전망도 미지수다. AI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누구도 10년 뒤 노동시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생성형 AI는 등장한 지 불과 몇년 만에 인간 업무 깊숙이 침투했다. 지금은 '보조 도구'처럼 보이는 기능이 예상보다 훨씬 큰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가 의미를 갖는 것은 AI를 오로지 '직업 소멸 기계'로만 바라보던 시선에 다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는 건, 정작 AI 모델들조차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챗GPT-5, 제미나이 2.5, 클로드 4.5에 '어떤 직업이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가'를 묻자 모델마다 답이 달랐다. AI 스스로도 미래 노동시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AI 업계 관계자와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AI가 인간 노동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의외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근거는 명확하다. 현재의 AI는 완벽하지 않다.

지금의 AI는 높은 수준의 문서를 만들고 분석도 수행하지만, 동시에 틀린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는 '환각(hallucination)' 문제도 안고 있다. 금융·법률·의료처럼 책임이 수반되는 영역에서 인간 검증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AI는 사람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만드는 도구에 가깝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포착되는 변화도 '직업의 삭제'보다 '직무의 재편'에 가깝다. 회계사는 AI로 재무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사는 AI로 영상 판독을 보조받으며, 개발자는 AI가 생성한 코드를 검수하고, 디자이너는 생성형 AI로 시안을 빠르게 구현한다. 인간의 역할이 단순 생산에서 방향 설정·판단·검증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역설적으로 AI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즉 맥락 판단, 윤리적 책임, 감정적 공감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도 없다. AI가 직업 자체를 당장 없애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요구되는 역량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반복 업무 중심의 중간 직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구조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AI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는 이미 노동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결국 AI 시대 노동시장의 핵심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가'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이 어떤 역할로 재정의될 것인가다.
그리고 지금 노동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yjjo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