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사라지는 제주 생명수 용천수… 646곳 물길 3D 지도로 남긴다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4 12:40

수정 2026.05.24 12:40

제주지하수연구센터 3차원 모델 지도 공개
1999년 1025곳서 2020년 646곳으로 감소
주요 용천수 20개소 우선 구축해 서비스
해안 저지대에 집중된 제주 물길 과학 해설
생활문화·지하수 보전 디지털 자료로 활용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두말치물 용천수 전경. 용천수는 상수도 보급 이전 제주 해안마을의 식수와 생활용수 역할을 해온 생명수이자 마을 공동체의 생활문화 공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두말치물 용천수 전경. 용천수는 상수도 보급 이전 제주 해안마을의 식수와 생활용수 역할을 해온 생명수이자 마을 공동체의 생활문화 공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온 용천수가 3차원 디지털 지도로 기록된다. 사라지거나 수량이 줄어드는 제주의 물길을 정밀 데이터로 남겨 지하수 보전과 마을 생활문화 기록에 함께 활용하려는 시도다.

24일 제주연구원(원장 유영봉) 제주지하수연구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제주 용천수 3차원 모델 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제주의 환경자산인 용천수를 디지털로 보전하고 도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용천수는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물이다.

제주에서는 '산물'이나 '물통'으로 불리며 상수도 보급 이전 마을의 식수와 생활용수 역할을 했다.

용천수는 단순한 물 자원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물을 긷고 빨래와 목욕을 하며 이웃을 만나던 생활공간이었다. 용천수를 디지털로 기록한다는 것은 제주의 지하수 자원을 보전하는 동시에 마을 공동체의 생활사를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 용천수의 감소 흐름도 기록의 필요성을 키운다.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보완계획(2022~2026)'에 따르면 1999년 1025곳에 이르던 제주 용천수는 2020년 646곳으로 줄었다. 매립·멸실된 용천수는 270곳,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용천수도 94곳으로 제시됐다.

■ 해안 마을 생활사를 만든 지하수의 창

서귀포시 대륜동 엉덩물 용천수에서 도민과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용천수는 과거 생활용수 공간을 넘어 오늘날에는 제주 해안마을의 생태·문화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뉴스1
서귀포시 대륜동 엉덩물 용천수에서 도민과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용천수는 과거 생활용수 공간을 넘어 오늘날에는 제주 해안마을의 생태·문화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뉴스1


제주 용천수는 해안과 저지대에 집중돼 있다. 이는 제주섬의 지질과 물순환 구조 때문이다. 한라산과 중산간에 내린 비는 투수성이 큰 화산암반층으로 빠르게 스며든다. 이 물은 지하수로 이동하다가 해안 저지대, 암반 틈, 지층 경계,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구간에서 지표로 솟아난다.

제주는 하천이 길게 흐르기보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섬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지표수보다 지하수와 용천수에 기대는 생활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해안 마을의 용천수는 바다 가까운 곳에서도 민물이 솟아나는 독특한 경관을 만들었다.

용천수는 현재에도 '지하수의 창'으로 불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 흐름과 수위, 수질 변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용천수가 마르거나 수량이 줄어드는 현상은 옛 물터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수 체계와 주변 환경 변화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제주지하수연구센터의 물순환 연구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센터는 2022~2023년 남·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라산에서 해안까지의 지하 지질 단면도를 작성하고 지하수와 용천수의 연령, 수질 특성, 용출량을 연계해 물순환 체계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 용천수 체류시간은 평균 5년, 지하수는 평균 18년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달라지고 개발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용천수 기록과 보전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용천수의 위치와 형태, 주변 지형을 정밀하게 남기는 일은 향후 지하수 관리와 환경정책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 사라지는 물길을 데이터로 남기는 보전 실험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공개한 ‘제주 용천수 3차원 모델 지도’ 화면. 센터는 드론 라이다와 포토그래메트리 기술을 활용해 주요 용천수 20개소를 입체 데이터로 구축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제주지하수연구센터 제공
제주지하수연구센터가 공개한 ‘제주 용천수 3차원 모델 지도’ 화면. 센터는 드론 라이다와 포토그래메트리 기술을 활용해 주요 용천수 20개소를 입체 데이터로 구축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제주지하수연구센터 제공


이번 서비스에는 드론 라이다와 포토그래메트리 기술이 적용됐다. 라이다는 레이저로 지형과 구조를 정밀하게 측량하는 기술이다. 포토그래메트리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합쳐 입체 모델을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 사진 기록이 용천수의 한 장면을 남기는 데 그쳤다면 3차원 모델은 구조와 주변 지형을 함께 보여준다. 사용자는 온라인에서 용천수 모델을 회전하고 확대하거나 이동시키며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현장을 직접 찾지 않아도 용천수의 형태와 주변 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센터는 우선 주요 용천수 20개소에 대한 3차원 모델 구축을 마치고 공개했다.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제주지하수연구센터 홈페이지 안의 '용천수 3차원 모델 지도' 메뉴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사업은 자연·문화유산을 정밀 데이터로 남기는 디지털 아카이빙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문화유산뿐 아니라 지형, 생태, 수자원 같은 자연유산도 3차원 데이터로 기록해 재난 대비와 보전 관리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주지하수연구센터는 이번 20개소 공개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 용천수로 3차원 아카이빙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용천수의 위치와 형태, 주변 지형, 보전 상태를 체계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고인종 제주지하수연구센터장은 "용천수 3차원 모델 지도는 제주의 물길과 생활사를 디지털 유산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라며 "지하수와 용천수 보전 관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